[수요단상-김인숙 칼럼니스트] 나는 극성 집사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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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인숙 칼럼니스트] 나는 극성 집사로소이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7.2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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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왜 옛날부터 유독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보다 극성맞을까?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도 틀린 말은 아니다. 캣맘의 부정적 이미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이것은 약자에 대한 혐오라고 본다.), 실제로도 유달리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지극정성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양이는 강아지들만큼 말을 잘 듣지도, 교육이 되는 것도 아닌데!

집에서 사는 고양이는 대체로 무리지어 생활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서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 다묘 가정에서나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물론 존재해야하는 질서이긴 하나, 대부분 1마리나 2마리 키우는 가정에서는 서열의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 그런 고양이들이 마음을 허락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히 보이는 몇 가지의 행동들이 있는데 그런 표현을 받아본다면 기꺼이 받들어 모시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로 갑자기 몸을 바닥에 툭 던지고 뒹그르거리며 배와 엉덩이를 보여주는 행동이나 갑자기 다가와 몸이나 다리 등에 자신의 체취를 묻히면서 비비는 행위 등은 신뢰하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는 행동이다. 자신의 체취를 묻히는 것은 내 것이라는 소유의 의미라고도 하는데 특히 집사가 외출을 하고 돌아왔을 때 그런 행동은 더욱 두드러진다.

또 만지는 것을 허락하고 그 체온으로 그르릉 소리를 내며, 내미는 손가락을 핥아준다든지 손등을 핥아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애정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인 것이다.

고양이의 보편적인 성격은 강아지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시크한 면이 많기 때문에 나를 신뢰하고 애정 있는 표현을 받는다면 온 몸과 마음을 바쳐 고양이를 모시고 살게 된다.

강아지 주인을 집사라고 부르는 걸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집사를 자처한다. 본인을 낮춰 부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실제로 고양이 관련 행사 홍보 문구에서 지갑으로 키웠다라는 문구를 지갑으로 모셨다고 바꿔달라는 장난이 있었고, 진짜로 그 문구는 모셨다는 문구로 변경되었다. 그렇다면 이게 우리나라만의 일일까? 웃기게도 외국에서도 캔 따주는 사람등으로 자신들을 낮춰 부른다. 고양이에 한해서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더 예민하고 까다롭게 먹는 것 입는 것 등을 고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고양이들의 성격에 따라 움직이는 면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말 못하는 것은 동물이면 다 그렇다지만, 고양이는 유달리 자신이 아픈 것을 숨긴다. 연기력으로 치면 연기대상을 받아도 될 만큼. 고양이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될 때면, 이미 늦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집사와 내기라도 하듯이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끝끝내 감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집중하고 살피면서 보살핀다. 갑자기 한 순간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별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집사 라고 낮춰 부르며, 성분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먹을 것을 고르고, 정보들을 공유하며 고양이를 주인님으로 떠받들고 사는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물론 아주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 뿐인 나의 고양이라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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