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산정동성당과 수류성당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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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산정동성당과 수류성당의 ‘인연’
  • 류용철
  • 승인 2020.08.1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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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5월 8일 김제 수류성당서 분리·설립
데예 신부 신생 목포 본당 초대 주임 임명
당시 100호도 안된 목포… 전남지역 성지로
전라북도 김제 수류성당.
전라북도 김제 수류성당.

[목포시민신문=김영준기자] 목포 산정동 성당은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으로 목포시 산정274 소재하고 있다. 189758일 김제 수류(水流) 성당으로부터 분리·설립됐으며, 전북 순창군 쌍치면 아천리(阿川里, 五龍村)에서 이듬해 72일 목포로 이전했다.”

목포지역 최초의 성당인 산정동성당이 지난 6월 새전북신문에 소개돼 눈길을 끈다. 이 신문은 광주대교구의 도움을 받아 목포와 전남지역에 가톨릭이 전파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이 보도에 따르면 전남 지역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6년의 병인박해를 피해 온 다른 지역의 교우들이 노령산맥 줄기를 따라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이들은 1872년의 나주 무학당(武學堂) 사건으로 새로운 순교자를 탄생시키면서도 꾸준히 복음 전파에 노력했으며, 한편으로는 새로 이주해 오는 신자들로 인해 전남지역의 교우촌이 점차 증가하게 됐다.

그 결과 1882년 이후에는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신부에 의해 장성·순창·담양의 20여 개 교우촌이 공소로 설정됐다.

1896년까지도 전라도 지역은 전주 본당·되재[升峙] 본당·수류 본당 등 북부 지역에만 본당 소재지가 있었으며, 남부 지역의 공소들은 라크루(Lacrouts, 具馬瑟) 신부가 사목하는 수류 본당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바로 그 해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전라도 지역을 순방하면서 나바위[羅岩] 본당과 목포 본당의 신설을 결정했다.

목포 본당 설립을 결정하게 된 것은 남부 지역의 공소들이 수류 본당과 너무 멀어 사목에 어려움이 있었던데다가 1897년에 개항 예정인 목포 지역의 발전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189758일 데예(Deshayes, 曹有道) 신부가 목포 본당 초대 주임으로,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는 나바위 본당 초대 주임으로 각각 임명되었다.

당시 목포 지역에는 100호도 안되는 마을이 있었을 뿐 신자는 한 명도 없었으므로 데예 신부는 우선 아천리 공소에 임시로 거처하면서 목포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기로 하고, 라크루 신부로부터 순창·정읍·장성 지역의 공소들을 인수받아 공소 순방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봄 판공을 끝낼 때까지 데예 신부가 순방한 공소는 순창·정읍·장성·담양·함평·태인·무안 등지의 26개소였다.

한편, 18979월부터 아천리 신자들을 목포로 보내 쌍교(雙橋, 현 남교동과 북교동 사이)의 토지와 가옥을 매입하기 시작한 데예 신부는, 이듬해 목포항에서 무안으로 가는 길목(현 목포 산정동)에 있는 산을 매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런 다음 그 안에 있는 가옥을 수리, 189872일 목포로 거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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