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칼럼리스트] 기생충과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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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칼럼리스트] 기생충과 한국사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8.1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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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아주 오래전에 읽은, 이사벨라 비숍 여사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책이 서가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비숍 여사는 당시 구한말 지도층, 소위 사대부들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양반은 생업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친척들의 부양을 받는 것이 전혀 수치가 되지 않으며 담뱃대조차 자기 손으로 가져오지 않는 기생충 같은 자들이다.”라고 기술하였다. 그녀는 땀 흘려 일하고 밥을 먹는다는 청교도적 자본주의 사고를 가진 서양인이었다. 그녀의 시각으로 볼 때, 책 전체에 분명 편향적 사고(오리엔탈리즘을 기저에 깔고 있는 서구인의 시각)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대부는 특이한 존재였을 것이다. 한 말 정부의 외교 고문으로 와 있던 미국인 데니 역시 당시 사대부는 경이로운 대상이었나 보다. 그는 노동을 불명예스럽다 생각하기 때문에 무위도식하며 노동을 소모 시키는 양반계급도 자신들이 먹을 것은 자신들이 벌어야 할 것이다라고 일갈하였다.

조선의 건국이념과 그 지배구조를 보면 사대부들 입장을 다소 이해할 수 있다지만 현대의 시각으로는 여전히 의아스럽기 그지없다. 신진사대부 정도전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줄 주군으로 일찌감치 이성계를 지목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삼고 이를 신봉하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을 세운 것이다. 군역과 납세와 부역을 면제해주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되 과거에 응시하고 출사하여 조정을 이끌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차지할 관직 숫자가 너무 적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중인계급에게 주는 잡직이 아닌, 양반들이 차지할 수 있는 조선의 중앙정부 관직은 350개 남짓에 불과했다. 지방관직을 감안하더라도 몇 안 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 즉 사화와 환국이 조선 전체를 관통한 이유이다. 과거시험은 자주 실시하여도 관직을 다 주지 못하니 이같은 정변 발생은 필연이었다. 노동을 하고 싶어도 체면 때문에 하지 못한다. 아니 안한다고 해야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런 양반사회에 안빈낙도는 최고의 수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본디 안빈낙도는 공자가 제자 안회의 학문하는 자세를 칭찬한데서 유래한다. 그런 연유인지 조선 사대부들도 유난히 안빈낙도를 읊은 글이 많다. 송순의 면앙정가도 그 하나이다. 고귀한 사상과 자연이 초가삼간에 어우러져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나무 잎이 시원한 바람줄기에 소스락 거리고 그 속에서 청빈을 즐기는 사대부의 삶이란.... 그러나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해주는 송순의 분재기(재산상속문서)를 보면 표리부동과 사기극의 극치라고 할만하다. 그러면서 농자 천하지대본야라는 위장 슬로건으로 모든 의무를 다하는 백성을 기만하였다. 참 웃기는 세상이 따로 없다. 자본주의 계급이 싹트는 줄 모르고 세월을 허비하다 신생 부르주아 계급에게 지도층 자리를 내준 서양의 중세 봉건영주가 떠오른다. 조선 사대부도 닮은꼴이다. 진보와 혁신은 가차 없다. 민초를 위하기는커녕 그들에게 기생해서 자신들의 안위만을 추구하던 양반들은 결국 나라를 송두리째 넘기고 말았다. 넘어간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면서! 부끄럽고 비참한 기생충의 말로였다.

집권 여당이 차기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의외의 인물이 깃발을 들었다. 참 신선하다는 느낌이다.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출사표가 변화와 혁신이다. 수많은 개인과 정당들이 이미 질러본 구호인데도 호기심 가득 찬 눈길로 바라보는 이유는 아마도 색다른 기대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수 시민은 대한민국 정치가 낧았다고 생각한다. 개혁의 최우선 대상이라는 것도 공감한다. 정치의 소비자이며 주체인 유권자들 의식이 과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시민들 각자가 꿈꾸는 세상이 모두 같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삶을 살아갈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은 이 정도 소박한 꿈도 때때로 멀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눈만 벌어지면 백성들 걱정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프랑스혁명이 무너뜨린 앙시앙레짐과 기생충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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