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김대호 시민기자] 오거리, 도시의 자정 능력 상징하는 콘트롤박스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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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광장-김대호 시민기자] 오거리, 도시의 자정 능력 상징하는 콘트롤박스 기능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8.2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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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동, 임광행, 김준형, 임기준, 전태홍, 석정각, 박광웅, 서한태, 서창호 등
80~90년대 50~60대였던 2세대 목포의 어른들이 이끌어
어른⇨형님⇨꼰대 문화로 퇴락? 시민단체 비판기능 상실?
120년 정체성 이어받을 ‘3세대 어른’ 희미해져
1. 임광행 보해양조 회장 2. 이훈동 조선내화 회장 3. 김준형 행남자기 회장 4. 임기준 목사 5. 전태홍 시장 6. 석정각 스님 7.박광웅 의장 8.서한태 박사 9.서창호 교수

[목포시민신문/김대호시민기자] 75주년 광복절이다. 그동안 오거리의 생성과 그곳에서 이루어진 목포 문예 르네상스, 친일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투고 후 설화에 시달렸다. 특히, 이난영이 그랬다. 히틀러 부인 에바 브라운은 나치 부역자가 아니라는 논리와 같다. 한발 양보하더라도 하의3암태도 토지항쟁과 48 만세운동 유공자들은 팽개쳐두고 굳이 그녀를 기념하겠다는 해괴한 아집을 이해할 수 없다. 그냥 노래만 좋아하자.

80~90년대 목포는 격동의 시기였다. 이 격동의 시기, 이념의 스펙트럼과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분출됐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래된 도시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2세대 사회적 거버넌스와 레짐(비공식적이지만 도시의 공익적 목적을 담당할 안정적 집단 혹은 세력)이 가동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오랜 시간 갈등을 조정해 오면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공동선이 도시 안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대표적 인물이라면 이훈동 회장, 임광행 회장, 김준형 회장, 임기준 목사, 박광웅 의장, 전태홍 시장, 정각 스님, 서한태 박사, 서창호 교수 등을 들 수 있다. 이분들 당시 나이는 50~60대였다. 40대도 있었다.

해남에서 태어난 이훈동 회장은 세계적 내화물 제조업체인 조선내화를 창업했고, 성옥장학재단을 만들어 지역 인재 양성에 힘썼다. 전남일보 명예회장을 역임했으며 국민훈장모란장을 받았다. 무안에서 태어난 임광행 회장은 국내 주류업계 1세대다. 보해장학회를 만들어 후학들을 양성하고,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영광에서 출생한 김준형 회장은 행남자기를 창업해 도자기 기술의 선진화 및 수출에 기여,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임기준 목사는 유신 시절 광주구국선언을 주도했고, 목포민주회복국민회의 의장과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 고문을 역임했다. 영암 출신 전태홍 시장은 진보적 정치 활동을 펼친 김철선생 계열로 목포YMCA 이사장, 목포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신안 출신인 박광웅 의장은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를 조직해 목포지역 민주화운동을 주도했고, 목포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를 이끌었다. 석정각 스님은 보현정사 주지로 한국불교법륜종 종정, 사단법인 정각나눔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무안 출신인 서한태박사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효시로서 전남 환경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 환경과건강연구소 이사장과 전남환경운동연합 고문을 역임했다. 광주 출신인 서창호 목포대학교 교수는 대표적인 진보학자로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 공동의장과 교육희망연대 의장을 역임했다. 여기에 70~80년대 목포의 기독교청년운동을 이끌었던 안철 장로와 죽동교회 김현삼 목사 등을 추가할 수도 있겠다.

공과는 있겠지만 이들이 지역사회의 어른으로서 펼쳤던 공익적 활동을 아직도 많이 회자하고 있다. 특히 이훈동 회장의 경우 목포가 배출한 인재 중에서 그분의 장학금을 받지 않은 이들이 없다 할 정도이다. 또한, 늘 청년들과 함께했던 오거리의 마지막 어른 서한태 박사의 환경보호에 대한 열정과 진보적 삶이 시민들에게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오거리거버넌스와 오거리레짐은 지방자치 이전 기득권에 의한 도시경영으로 평가될 수도 있고, 목포 특유의 어른문화와 형님문화로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다.

그런데 목포의 어른문화는 독특하다. 진보와 중도, 진보를 망라한 주요 출입 인사들이 오거리다방에서 만나 지역의 주요한 이슈에 관한 토론과 여론형성의 기능을 담당했다. 갈등 발생 시 이해 세력 간의 소통과 화해를 알선하고 조율을 통한 문제 해결과 사회적 합의와 대타협을 끌어내기도 했다. 박광웅의장, 서창호교수, 임기준목사 등이 진보에 서 있었다면 전태홍시장, 정각스님은 중도에 있었고, 나머지 분들은 보수적 색채였다. 그러나 반목하고 대립하여 판을 깨는 일은 없었다. 다름을 존중하고 예를 다하여 서로를 대했으며 경청하고 조율하였다.

이분 중 상당수는 청년지도자들과 대화 하는 것을 즐겼다. 목포의 청년들은 오거리 묵다방, 야자수다방, 오거리다방에서 이 어른들과 차와 커피를 마시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지역을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를 배웠다.

이분들 대부분은 돌아가셨다. 지금 오거리 거버넌스는 거의 퇴색하였다. 어른 없는 도시가 되어간다는 의미이다. 오거리의 쇠락은 기존 도시레짐의 쇠락 혹은 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른문화가 형님문화로 다시 꼰대문화로 후퇴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1990년대 중반 하당 신도심이 개발되면서 목포오거리와 오거리다방은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81년 영산강하굿둑이 건설되고 급격한 물류기능의 쇠락으로 이루어졌고, 이 시기 지방정부는 신도시개발에 대립 되는 오거리의 거버넌스와 레짐 기능, 중심상권, 문화예술, 해양과 수산, 유통 기능을 경시하기 시작한다.

특히, 2005년 이후 지역 기반이 취약한 외부유입 인사들에 의한 정치지형이 형성되면서 기존의 레짐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세력인 오거리 레짐 대신 새로운 파트너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기존의 레짐에 대한 의도적 배제, 비판적 시민단체에 대한 견제, 시민단체 및 문화예술단체의 지원금을 통한 견인, 홍위세력에 대한 전폭적 지원 등이 일반적 양상이라 볼 수 있겠다.

도시의 자정 능력을 상징하는 콘트롤박스 기능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지역이 가지는 통합적 정체성과 소통의 거점이 상실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동시에 도시의 자생성과 지속가능성의 약화를 의미한다. 도시의 거버넌스를 회복한다는 것은 꼰대가 아닌 어른이 있는 도시를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은 목포의 경우 기존의 도시레짐 기능을 제도적으로 대체한 의회나 시민단체가 도시의 일관성 있고 공익적인 정책수행을 견인하고, 비판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가이다.

또한, 그 당시 50~60대였던 2세대 목포 어른들의 정체성을 계승한 3세대 어른들은 누구일까? 이분들이 지역에서 건강하고 공익적인 레짐을 형성하고 다음 세대를 바람직한 모습으로 견인하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도 나올 수 있다.

목포시는 2주갑(120)을 맞이했다. 목포의 청년들이 SNS를 통해 50~60대 어른들을 공공연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청년 세대와 어른 세대의 온라인상의 원색적인 난투극은 물론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세력들 간의 검은 전쟁(?)도 빈번하다. 진보와 보수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민주화운동 세력의 상당수는 기득권 세력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120년 목포의 정체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승계할 3세대 어른들의 바로서기와 건강한 도시레짐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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