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김경완 시민전문기자] 신안 암태면 당사도 지키는 젊은 67세 이준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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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광장-김경완 시민전문기자] 신안 암태면 당사도 지키는 젊은 67세 이준형 씨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9.2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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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김경완시민기자] 신안 안좌도의 퍼플교는 2010년 개통 당시 소망의 다리로 불렸다. 박지도에 사는 할머니 한분이 나 살아 생전 저 두리(안좌도 본섬의 한 마을, 박지도에서 마주보는 마을임)까지 걸어서 한번 가봤으면 좋겄소.”라는 소원을 실제 현실로 만들어준 사연 때문이다. 섬사람들은 안개나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직접 차를 타고 육지로 나가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자은, 암태, 안좌, 팔금면 주민들은 지난해 그 꿈을 이뤘다.

201944일 개통한 천사대교는 섬사람 뿐만 아니라 육지사람까지도 누구든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됐다. 개통 이후 지금까지 매일 1만대가 넘는 차량이 섬을 드나들고, 주말이면 14,000대가 넘는다(20194월 기준)고 한다. 나들이에 나선 육지사람들은 천사대교를 넘어가며 눈앞에 펼쳐진 섬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저 섬들이 한 덩어리로 보이지만 모두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골짜기에 깃든 마을들마다 자기들 고유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저 차창 밖으로만 섬과 마을을 대상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천사대교를 통해 암태도로 가는 길 오른편에 보이는 섬, 당사도와 그 사람들을 소개한다. 다리로 연결되지 않아 여전히 배를 타고 가야만 하는 섬. 왜 당사도 사람들은 그렇게 불편한 곳에서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까?

당사도(唐沙島)는 당나라(중국)에서 밀려온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섬이라고 하는데, 억지스러운 이름 같다. 내게 당사도 하면 이순신 장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명량해전 직후 당사도에 숙영지를 잡고 묵으며 판 우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 있기 때문에 찾아가기 어렵지만 산책로나 둘레길을 잘 만들고 안내해 준다면 멋진 장소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동북쪽을 바라보는 만도 무척 한적하고 아름답다.

이 섬에는 무인도를 부속섬으로 몇 개 가지고 있는데, 천사대교를 배경으로 한 동그란 섬 네 개가 유독 예쁘게 눈에 들어온다. 마침 썰물 때 물이라도 빠질 때면 섬과 섬을 잇는 하얀 모래사장이 드러나 더욱 아름답다. 재미있는 것은 네 개의 섬이 각각 자신의 이름을 가지지 못한 점이다. 암태도를 향한 천사대교에서 봤을 때 기준으로 오른쪽 세 개 섬을 통틀어 석섬이라고 부른다. 반면, 왼편의 한 개 떨어진 섬은 나주석섬이다. 설화에 의하면 어느 때인가 무안군수와 나주목사가 내기를 해 나주목사가 이기면서 그 댓가로 나주 석섬을 갖게 되었단다.

당사도는 1637년 경 나주임씨, 김해김씨, 경주이씨, 진주강씨가 나주에서 건너와 입도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알려졌다. 섬 둘레에는 지주식 김양식장이 넓게 분포되어 있고, 실제 주민들이 김양식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이 많다. 토박이 마을 주민인 이준형(1954년생, 67)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난한 이 섬에서 씨들이 시멘트 종이에 코를 풀고 버리면, 이가들은 그걸 주워다가 닦아 내고 그 종이에다가 공부를 했단다.’

6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시멘트가 섬에 들어와 한참 북적일 때 전주이씨들은 그렇게 악착같이 공부를 하며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실제 작은 섬 당사도 출신의 교장과 교육장 출신들이 20명이나 된다는 것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이준형도 어린 시절 일치감치 목포에 나가 학교에 다녔다. 목표는 광주서중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섬의 실력자가 유학 가서 더 잘하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북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중에 입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입학한 곳이 유달중학교. 이준형은 그곳에서 권투를 배우게 됐다. 2학년이 되어서 목포시 대표로 전국체전에도 나갈 정도로 열심히 운동했다. 자연스럽게 학교보다는 바깥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공부만 시키는 집안에 대한 반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학교에 다닐 상황이 되지 않았다. 급기야는 곡성군까지 전학을 가서야 겨우 학업을 마칠 정도였다니 어느 정도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이준형은 일찍 고향 당사도에 들어와 바다 일을 시작했다. 김양식도 했지만, 지금은 바다 일을 접고 6천평 밭에서 농사만 짓고 있다. 마늘, 양파, 고추를 생산하지만, 주력상품은 콩이다. 장을 담그는 노란 장콩을 40kg 가마니로 50개 내외를 수확한다. 이것을 바로 팔면 1,000만원의 수입을 얻지만, 메주를 쒀서 팔면 3,000만원으로 불어나고, 된장으로 만들어 팔면 6천만원으로 가치가 커진다. 이것이 6차 산업으로 단순한 생산에 그치지 않고 부가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현재 농어촌에서 가장 필요한 생산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준형은 어려운 이웃들도 잘 챙겨주고 있다. 언어와 청각장애가 있는 부부를 각별히 챙기며 그 자녀가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가 하면, 동네에 필요한 일이면 앞장서서 나서고 있다. 이따금 육지와 다른 섬의 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잔씩 하러 나가는 것이 불편하지만, 당사도는 지금의 자신이 있도록 든든이 지켜준 소중한 고향이고 든든한 빽이니 고맙기만 하다.

당사도에 가는 배편은 상대적으로 편해졌다. 천사대교가 놓이기 전 송공항에서 암태로 가는 배가 하루 두 번만 경유했는데, 지금은 네 번으로 늘었다. 순전히 기점소악도의 순례길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어부지리로 얻은 혜택으로 보인다. 대신 기점 소악도로 항로가 연결되면서 당사도선착장이 기존 마을 앞에서 동북쪽의 새로운 선착장으로 바뀌었다. 마을에서 걸어가기엔 훨씬 멀어지게 된 것. 다행히 신안군에서 12인승 승합차를 마을버스로 내 주었다. 주민들에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소중한 발이다. 이준형은 기점 소악도처럼 당사도에도 활기찬 젊은이들이 방문해주는 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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