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발톱 깎고 귀지 파주는 동네 의사
상태바
[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발톱 깎고 귀지 파주는 동네 의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0.15 0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추혜인 지음/ 심플라이프/ 2020925일 발행)

[목포시민신문] 의사들의 파업과 휴진 뉴스를 연속으로 접하는 이 즈음 왕진이라는 용어는 낯설다. 낯선데 정겹고 따뜻하고 든든하다. 서울 은평구의 동네 의사인 추혜인 원장은 매주 수요일마다 왕진을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병원에 진료 받으러 나올 수 없어 답답하고 염려스러우니 의사가 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작된 왕진과 진료실 안팎의 이야기가 책이 되었다.

물론 진료실에서만큼 뭘 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왕진을 나가면 다른 게 보인다. 환자를 둘러싼 환경과 가족들이 보이고 경제적인 상황도 보인다. 진료실에서는 그분의 질환이 눈에 들어온다면, 집에서는 그분의 생활 전반에 시선이 간다. 다른 의료협동조합의 의사 선생님은 왕진 나가면 재활용 쓰레기통 뒤져서 술병부터 세기도 한단다.”

분홍색 플라스틱 왕진 가방을 들고, 환자의 동네를 더 잘 살피기 위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왕진 가서 그녀가 하는 일도 술병을 세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발톱을 깎거나 귀지를 파는 것으로 진료를 마칠 때도 있다. 의료용 니퍼로 발톱을 손질하는 경우, 무좀을 치료하는 첫 단계가 된다. 무좀 치료는 낙상 사고를 막고 고관절 골절을 예방하며, 당뇨족도 미리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그런가하면 청력이 약한 어르신의 귀지를 파내는 것으로 소리를 듣지 못해 교통사고에 노출되는 것을 예방하고, 청각 자극이 줄어 뇌의 인지기능이 저하되고 치매로 악화되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발톱을 깎고 귀지를 파는 것과 같은 이치로 때로는 그저 대화를 나누거나 기저귀를 갈기도 한다.

환자와 보호자와 간병인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소하거나 생사가 오가는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며 저자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지금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녀에게는 의사가 할 일과 간호사가 할 일, 보호자가 할 일과 간병인이 할 일이 구분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동네 주치의로서 환자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페미니스트 주치의. “페미니즘 만으로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건강을 헤치는지 잘 알기 때문이라고 진술한다.

명의라 불리는 의사로서의 능력이 단지 실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문장과 행간에 자리잡고 있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명징한 통찰력, 게다가 느긋한 여유와 개구장이같은 유머 감각이 송두리째 환자에게 동원되는 까닭이 아닐까. 그녀가 말하는 공명을 나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한다.

오늘도 진료실의 문이 열린다.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 사람의 가장 아프고 힘든 시간이 걸어 들어온다. 나는 그 시간에 공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동네산책 책방지기/윤소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