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달마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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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달마고도
  • 류용철
  • 승인 2020.10.2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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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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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돌아오는 길 차창 밖 들판 풍경이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해남 남녘 들판 논마다 촘촘히 자란 벼는 지나치리 만큼 풍성한 알곡을 매단 채 누렇게 잘도 익었건만, 저 많은 벼를 어떻게 거둬들일지. 한 해 많아야 두세 번 찾아뵙는 부모님은 지난번보다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팔순을 넘기면서 하루하루가 다르겠다생각은 했지만, 짐작보다 훨씬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여간해서 일을 손에서 놓지 않던 장인어른도 구순을 바라보면서, 올해는 외부활동을 못하고 계신다는 장모님의 귀띔이다.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면서 조만간 닥쳐올 자신의 문제에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의 상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주말마다 해남 달마산 달마고도를 찾아 걷기를 한 것도 벌써 수개월째가 된다. 매일 이별하며 부지런한 계절에 맞춰 변하는 남녘 풍경은 그 자체로 눈의 성찬을 선물하지만 소소한 삶의 상처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17.76적은 거리가 아니다. 적어도 5~6시간을 걷기에 투자해야한다. 발바닥과 종아리의 근육통은 삶의 의미를 찾는 노승이 수행하듯 미황사 대웅전 앞에 나를 이끈다.

얼마 전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 예찬을 책장에서 발견하고 읽었다. 초판 발행 날짜가 20021월로 찍혀 있다. 이 책은 아마도 당시의 게으른 나의 생활방식에는 잘 맞지가 않았는가 보다. 다시 펼쳐본 책 속에는 지금의 내 머리를 서늘하게 하는 경구들이 한겨울의 서리처럼 빛나고 있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첫 문장에서부터 나는 먹먹해져 버렸다. 운동이나 업무를 위해서 아니라, 사색을 통한 이 세상과의 내밀한 소통을 위해 내가 진정으로 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차를 타고 가며 듣는 소리는 한낱 소음에 불과하지만 걸으며 듣는 소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새롭다. 나와 세상에 대한 경고의 소리일 수도, 위로의 소리일 수도, 깊은 꿈 같은 몽상의 소리일 수도 있는 무수한 소리들이 내가 걷는 그 길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들을 받아들이며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을 자각하고, 살아있다는 의미를 깨닫는다. 한참을 걷고 난 후의 휴식은, 스스로 재충전된 몸과 마음을 발견할 수 있기에 더욱 달콤하다.

둘레길 곳곳에 설치된 그루터기에 앉아 사색보다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쥐고 만보계(萬步計)를 본다. 웹 프로그램에 목표달성이란 문구와 함께 소모 칼로리가 표시된다. 1만 보 걷기가 일본의 만보계(萬步計)를 발명한 회사의 마케팅이라는 설도 있지만, 실제로 만보계를 사용하면 훨씬 운동량이 늘어난다는 통계도 있다. 만보계에 표시된 것 만큼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가뿐하지만 근육통이 나의 몸 상태를 말해 줄 뿐이다.

함께 걷는 아내는 힘들어 보이는 나에게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설파한다. 최근 방영된 생로병사의 비밀에 소개된 보폭 10cm 늘리기걸음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걸음보다 10cm 정도만 넓은 보폭으로 빠르게 걷는 것이 활동 강도가 높아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준다. 하루 2시간씩만 걸으면 걷지 않는 사람보다 뇌졸중이 40%, 심장마비가 50% 줄어든다고 한다. 걷기의 가장 큰 효과는 뇌세포 생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걷는 동안에 기력 증진에 좋은 여러 가지 호르몬이 생성되고 걷는 행위가 관절에 자극을 주어 뼈의 고밀도 강화에 도움을 준다.

달마고도를 통해 발견한 걷기는 새로운 메시지를 내게 던져주며 또 다른 생활의 시작을 권유하고 있다. ‘보행은 삶의 평범한 순간들의 가치를 바꿔 놓는다. 보행은 그 순간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한다.’ 그러니 당신도 오늘 같이 한번 걸어보시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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