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 윤소희 작가] “오-메 단풍 들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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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 윤소희 작가] “오-메 단풍 들것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0.2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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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작가‧ ‘동네산책’ 책방지기)

[목포시민신문] 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의 시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의 첫 연이다.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잘 알려진 김영랑의 작품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아마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시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매 단풍 들것네라는 첫 행 만큼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내가 이 시를 처음 접한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창 문학에 심취해 있던 학창시절에 맨 처음 접한 강렬한 전라도 방언임에는 틀림없다. 장독대 바람에 날아온 감잎을 보며 곧 단풍이 들겠다고 놀라 외치는 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전에, 나는 이 구수하고 촌스러운 듯 짤막한 경탄에 홀딱 반해버렸던 것 같다.

목포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어디를 가나 귀를 쫑긋 세워 사투리를 들으려고 기를 썼다. 식당에서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에 진한 사투리가 들려오면 한 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입안의 음식을 녹이듯이 조심스럽게 씹어 삼켰다. 실망스럽게도 어느 정도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 아니고는 좀처럼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그나마 식당 안에 써붙인 인사말이나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마케팅(?) 차원에서 써놓은 문장들로 목포에 왔음을 간간이 실감할 수 있었다.

오매! 만내서 솔찬히 반갑소잉~!”

목포 이짝저짝 둘러봉께 귄있지라우.”

목포 음식이 허벌라게 게미징께 꼭 잡수고 가쇼잉~!”

나는 메모한다. 이런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반색을 하며 중얼중얼 읽어도 본다. 글자로만 보는 것은 소리로 듣는 것보다 생생할 수 없다. 게다가 크고 작은 소리의 강약과 높낮이를 모른 채 억양 없이 읽으려니 어색하기만 할 뿐이다. 행여 누가 듣기라도 했을까봐 민망하기까지 하다.

책방을 열고 본격적으로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을 때 내게는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글쓰기 수업을 받으러 오는 분들께 목포 사투리를 배울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배운다고 목포 사람처럼 구수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늘 사투리에 욕심이 났다. 오리지널 목포 네이티브 스피커들이 접신한 무당처럼 사투리를 와르르 쏟아내주지 않을까 싶었다. 말이든 글이든, 꼭 목포 사투리가 아니더라도, 전라도 공용어라도 좋으니. 그러나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분들 역시 대부분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목포에 와 있다는 걸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표준어를 낭창하게도 사용하고 있었고, 만남의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가끔 억양에서만 살짝 사투리가 묻어나오는 정도였다.

어느날 한 분이 글쓰기 수업에 제출한 합평작을 놓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문장은 너무 사투리를 심하게 써놓아서 빼는 게 좋겠죠? 나는 화들짝 놀라며 절대로 빼지 말라고 답했다. 심지어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긋고 단단히 사수하듯 별표까지 그려놓은 상태였다.

오매, 그랑께 아가씨 빨리빨리 준비했어야제. 기댕겨봐. 신호 없는 곳으로 갈랑께.”

빛나는 문장이었다. 기차 시각에 닿지 못할까봐 재촉하는 손님에게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었다. 이 대사 한 마디로 당시의 상황과 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이 문장 덕분에 글이 찰지고 맛있어지고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은 설명하고 설득하고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글을 통해 가만히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나는 배웠다.

보여줄 게 적은 사람은 가난한 작가가 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나는 전라도 사람이 등장하는 글을 썼다가 사투리를 구현하지 못해 결국 등장인물을 죄다 서울 사람으로 바꿔버리는 만행을 저질러야만 했던 경험도 있다. 목포의 문학은 목포의 문화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줄 때 가장 완성도가 높을 것이다. 목포를 잔뜩 품고 있기에 목포 그 자체인 작가, 가을 바람에 -매 단풍 들것네하는 싯구절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작가가 목포를 문학 도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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