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한국 다문화사회는 그리스, 로마를 어떻게 볼 것인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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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한국 다문화사회는 그리스, 로마를 어떻게 볼 것인가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1.1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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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자가격리는 코로19 시대를 맞기 전에는 우리 일상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약간 억지를 쓰자면 우리 역사는 자가격리로부터 출발한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왕검은 아버지 환웅과, 오로지 인간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마늘과 쑥을 먹으며 자가격리(?) 끝에 인간이 된 웅녀 사이의 자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잘 알다시피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조선상고사(내용이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삶에 이처럼 깊이 스며들어 나름의 역할을 한 신화도 드물 것이다. 이 신화는 한민족을 단일민족으로 결속시켰고 그런 이유로 위기 때마다 슬기롭게 국난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과거 국난극복의 영감을 주었던 단군신화의 핵심인 단일민족은 현대에 들어 그 가치가 과거만큼은 아닌 듯하다. 사실 멀리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이 땅에 들어와 가야국의 왕비가 된 허황후 이야기를 보더라도 순혈주의를 부정할만한 증거는 일찌감치 존재하였다. 아시아 중원과 만주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나라의 경계도 없이 쟁투를 벌이며 혼혈이 되었고, 또 그들이 한반도에 유입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단일민족론을 위기극복에 활용했던 민족지도자들의 충정이 이해가 된다. 어쨌든 그 단일민족 상당수가 근·현대에 들어서 우리 뜻과는 무관하게 한반도를 떠났다. 그리고 만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뿐만 아니라 일본, 아메리카 등 지구촌에 흩어져 살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민족이 800만명을 헤아린다니 인구 대비 해외 거주 비율이 압도적이고 이들은 전 세계에서 그야말로 코리아 디아스포라로 존재한다.

최근 인종문제가 자주 이슈가 되고 있는 현대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오래전에 미국땅을 밟은 한민족 선배들은 얼마나 차별적 대우에 시달렸을까? 필자가 처음 월스트리트에 발을 디뎠던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심지어 일본인을 제외한 황인종들은 미국 주류인(WASP)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애초에 WASP가 만들어진 배경도 어찌 보면 지배 권력의 독점적 배타적 인종주의라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70년대 이후 아일랜드계 케네디, 레이건, 부시 부자가 권력을 잡으면서 좀 더 확장된 개념으로 사용되고는 있지만, 그 기저에는 이기주의와 배타성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순혈주의와 인종주의가 과연 현대의 초국가적, 범세계적인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힘을 자랑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극단적인 두 개의 사례가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성인 남성만이 시민이었다. 여성, 외국인은 사람 축에도 끼지 못했다. 이들은 나름 강력했지만 확장성에 한계가 있어서 도시국가에 머물렀다. 그러나 로마제국은 타민족, 타인종에 관대했고 이질적인 문화를 허용함으로써 세계제국을 건설하였다. 로마는 타문화에 대한 관용을 넘어 심지어 이민족 출신의 황제를 모신 경우도 있었다. 다인종·다문화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학창시절, 친구집에 전화를 해서 어눌한 한국어로 친구 형수를 당황하게 한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은 흔치 않았고 우리말이 서툰 게 당연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여러 이유로 한국사회에도 이주민들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필자가 귀향해서 살고 있는 진도는 이주민들의 도움 없이는 농어업이 순조롭게 돌아가질 않을 정도이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이곳 진도에만 국한된 일인가? 단지 타국살이가 고생스럽겠구나 수준의 온정주의로만 이들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열린 사회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하늘이 열린 이래 한반도에 유입된 여러 종류의 피가 이미 하나가 된 것처럼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또한 이미 한민족 공동체에 속해있다. 우리 내부의 갈등 해소도 시급한 일이지만 이 땅의 이주민들을 외면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경선 없는 탈민족적 세계시민사회가 되도록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등 다방면에서 법적 제도적 정비가 포괄적이고 신속히 다뤄져야 한다. 투표가 끝나고도 대선 승자를 가리지 못하고 있는 미국에서 이념과 인종차별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모습은 강 건너 불구경거리가 아닌 우리가 곱씹어 보아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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