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강성휘 전 전남도의원] 장애인 인권유린 사건에서 본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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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강성휘 전 전남도의원] 장애인 인권유린 사건에서 본 악의 평범성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1.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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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악의 평범성이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난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거대한 반인륜적 범죄가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를 맹종한 광신도나 반사회적 사이코패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명령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음에서 유래한 철학적 개념이다.

이 개념은 유대계 독일 출생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1961411일부터 1215일까지 8개원 간 독일의 1급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고 난 후 출판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부제: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

악의 평범성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도 어떤 상황 속에서는 거대한 악을 저지를 수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보고서로 인해 아렌트는 당시 독일 사회와 유대인 양쪽으로부터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거대한 반인륜적 범죄는 히틀러나 괴벨스, 힘러 등 악마와도 같은 몇몇 나치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이고, 평범한 독일인들은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개념은 학살의 죄와 책임이 독일의 평범한 국민들에까지 확장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등 유대인 사회도 아렌트의 지적에 반발했다.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에서 유럽 각지의 유대인공동체 일부 지도자들도 나치의 유대인 조사, 색출, 수송 등 범죄에 협력했다고 지적했고, 1급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은 이스라엘 법정이 아닌 국제재판소가 더 적절하다고 썼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고, 시스템 속의 톱니바퀴와 같은 존재라고도 표현했다.

아렌트는 모든 유대인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피해자라는 선입견에 이의를 제기했기에 유대인의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아이히만의 죄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에 앞서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의견으로 인해 유대인을 위한 정의를 버렸다고 공격당했다. 아이히만이 평범하고, 시스템 속의 톱니바퀴와 같은 역할이라는 대목에선 1급 범죄자를 동정한다고 비난받았고, 아이히만의 죄와 책임을 줄여주거나 벗겨주려고 그러느냐 힐난 받았다.

그리고 57년이 지난 지금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관한 정의는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개념에 대한 사회적 수용이 악의 종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20147년 간 장애인을 착취했던 신안 염전노예사건이 터졌다. 이후 잠시 잠잠하나 싶더니 2016년에는 18년 간 장애인을 유린한 청주 축사노예사건, 2017년에는 17년 간 인권을 유린한 2차 신안염전 노예사건, 그리고 얼마 전에는 경남 통영에서 무려 19년 간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한 양식장 노예사건이 터졌다.

가해자의 장애인 차별의식, 피해자의 낮은 저항력, 이웃주민의 방관과 가해자 동조, 사법기관의 형식적 관리감독 등 장애인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오랜 인권유린의 환경이 되었다.

이 사건들은 악의 평범성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렌트는 악이 근본적이지 않고, 깊이도 없으며, 어떤 악마적인 동기나 의도도 없기에 역설적으로 평범하다고 보았다. 악은 스스로 생각을 포기하는 순간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인간의 모습으로 저질러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장애인 노예사건들에서도 악의 평범성을 볼 수 있다. 염전이나 축사나 양식장의 가해자들은 사회적으로 볼 때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떤 광신도적인 특징이나 악마적 동기나 의도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이 거대한 악을 저지르게 된 이유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단지 명령에 순응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이를 노예사건에 대입하면 장애인은 차별해도 괜찮다는 편견과 옛날부터 그렇게 해왔으며, 다른 사람들도 다 한다는 잘못된 관행에 대한 순응이 거대한 장애인 인권유린으로 이어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편견과 관행에 순응한 결과 유린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어떤 경우에도 당연한 것이 아니다. 악은 멀이 있지 않다. , 내 안에 아이히만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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