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자라는 왜 호랑이를 불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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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자라는 왜 호랑이를 불렀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2.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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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글‧김진/ 그림‧김우현/ 아이들판/ 2020년 12월 3일 발행)

[목포시민신문] 1일 1범. 이 신조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에 중독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제작한 한국 홍보 해외 광고 영상 시리즈가 누적 조회수 3억 회를 돌파했다고 한다. 바로 이날치 밴드의 음악에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안무가 곁들여진 ‘Feel the Rhythm of Korea(한국의 리듬을 느끼세요)’ 시리즈 중 ‘범 내려온다’가 그 주인공이다.

‘범 내려온다’는 판소리 《수궁가》의 한 장면이다. 작고 어린 존재의 지혜가 크고 무서운 존재를 물리칠 수 있다는 해학과 현실 풍자가 압권인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세계로 대중화 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보여진다.

이번에는 그림책 차례다. 그림책 『범 내려온다』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 가장 재미있고 긴장감 넘치며 어린이들의 흥미와 눈높이에 맞닿아 있는 수궁가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토끼를 발견한 자라가 “토 선생” 하고 부른다는 것이 마음도 급하고, 뭍에 나와 턱으로 기어다니는 바람에 턱이 힘이 빠져 “호 선생” 하고 부르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자라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깊은 골짜기를 한달음에 내려오는 허세 가득한 호랑이! 자신을 선생이라고 불러준 누군가를 만나러 기대에 부풀어 한달음에 내려오지만, 그 사이 모든 짐승들이 숨고, 말라붙은 말똥 같은 자라만 남아 있다는 사실에 실망한 호랑이가 자라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신경전. 자라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자라의 임기응변에 아이들은 꼼짝 없이 책에 붙잡혀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눈알을 데굴거리며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한 민화풍의 그림과 실제로 판소리를 듣는 듯 구성지고 리드미컬한 입말이 어우러져 입체적인 판소리 책이 되었다. 줄거리 전체를 전달하지 않고 한 대목에 집중하여 판소리를 직접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한 점이 독특하다. 이 강렬하고 우습고 엉뚱한 장면의 매력에 빠진 어린 독자들은 수궁가 전체 줄거리에 대한 흥미와 궁금증을 증폭시키지 않을까 싶다.

『범 내려온다』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다. 이날치 밴드와 함께 어깨 들썩이며 엉덩이 씰룩이며 판소리 한 자락 펼쳐보는 흰겨울이다. 얼쑤!

쿵, 쿵, 쿵, 쿵! 우르르르르!

“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깊은 소나무 골짜기를 지나 큰 짐승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 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쑹덜쑹.

동아 같은 앞다리, 전동 같은 뒷다리.

쇠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 흩치며

“범 내려온다.”

동네산책 책방지기/윤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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