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조준 동신대 교수] 어른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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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조준 동신대 교수] 어른의 습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12.2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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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준(동신대학교 교수)

[목포시민신문] 얼마전 한 방속국 프로그램에서 성공한 사람과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성공하셨냐의 질문에 그 사람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쩌다보니”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생각할수록 깊이가 있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인생에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돌아보면 잘 산다는 것과 인간으로서의 쓸모 있게 산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어쩌다보니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머뭇거리고 살아왔던 내 인생에 질문을 던진다. “어른”이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쓸모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살다 보면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 어딘가 불편하고 껄끄러운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렸을 때는 내 기준에 맞지 않은 사람들을 ‘틀렸다’고 단정짓고 배척하거나 무시했다. 그러다가 다툼이 일어나 불편한 관계로 발전하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어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오랜 관계를 경험한 어른들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일단 내 기준에 들어맞는 사람은 없으며 개인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된다.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라“, ”인자무적(仁者無敵)’ 등 젊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많은 유명인들이 ‘예의’와 ‘친절’ 같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말들을 왜 그러게 강조하였는지도 알게 된다. “예의”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고, ‘친절’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인간관계에 활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최고의 비방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기 전 우리들은 작은 일에 흔들리고, 남의 시선과 평판에 흔들리고 살았다. 무례한 사람에게 발끈하고, 내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답답해 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이 겉으로 표출되었을 때다. 감정의 칼날이 입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이 되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젊었을 때는 감정의 기복이 널을 뛰고 그 기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약하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모든 일은 마음먹은 대로 굴러가지 않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삶의 이치를 비로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아픔을 겪으면서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의외로 말이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쓸모 있는”, “존경받는” 어른이란 더 그렇다. 어른이란 거쳐 온 길만큼 삶의 경험들이 나이테로 내려앉은 존재다. 비바람을 견디면서 경험이 축적되고 만사에 익숙해지면서 특별했던 사건들이 어지간한 일이 된다. 그것을 내공이라고 여겨왔지만, 문득 이런 의심이 든다. 내가 지혜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편견은 아니었을까? 세월에 단련되어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세월에 길들여져 딱딱하게 굳어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른들은 성취감보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익숙해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들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인생의 하강곡선을 그릴 것 같아서다. ‘고인 물’이니 ‘라떼는 말이다’라는 유행어에는 이러한 “어른스러운”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깔려 있다. 다산 정약용선생은 60살이 되었을 때 “내 나이 예순, 한 갑자를 다시 만난 시간을 견뎠다. 나의 삶은 모두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어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빈틈없이 나를 닦고 실천하며 내게 주어진 삶을 다시 나아가고자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귀양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정약용 또한 그러했다. 그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추락했고, 세상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렸음을 절감했다.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유폐되면서 자신의 묘지명마저 스스로 써야 할 처지가 되었을 정도로 그는 완전하게 삶의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정약용은 실망하지 않았다.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한 삶을 부정하지 않고 기꺼이 끌어안았고, 평생을 공부에 바쳐 도달한 경지에 안주하지 않고 그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 육십 년 동안 쌓은 학문을 기꺼이 내려놓았다. 이미 인생의 바닥을 경험한 정약용이 두려워한 바는 다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된 채로 늙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삶이 다 하는 순간까지 자신이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기를 바랐기에 환갑에 이르러서 이제부터야말로 공부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 나를 찾기 위해 나를 비우는 마지막 습관이 정약용이 선택한 어른의 습관이었다. 그래서 다산은 환갑에 이르러 일상의 소소한 순간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고, 누런 콧물을 흘리는 동네 아이부터 이름 없는 촌로에 이르기까지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친절과 예의를 다했다. 자신을 만들어나간 습관들을 모두 비우고 평생 동안 지켜나갈 단 하나의 습관을 새로 들이는 것, 그것이 다산이 매일 새로워지며 평생 성장해나가기 위해 택한 방식이었다. 자기 정체성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지금, 관계에 대한 고민에서조차 철저하게 나를 기준으로 삼는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를 갈무리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내 편으로 물들이려고만 하는 것이다. 무례한 세상에서 어른답게 사는 것, 그것이 다산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싶었을 ‘어른의 습관’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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