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아버지는 나를 외면했다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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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아버지는 나를 외면했다④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1.2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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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거그 요양원이 원래는 결혼식장이었단게. 인자는 결혼하는 사람들보다 아픈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 돼야 부렀어. 늙고 아프면 다들 요양원으로 보내 논게 이게 고려장이 아니고 뭐단가, 안 그러요?”

운전기사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하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나는 창밖만 내다보았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택시는 목포 역 광장을 빠져나가 외곽의 한적한 도로에 나를 내려놓고 떠났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디즈니랜드의 성채를 본 딴 조악한 구조물이 옥상에 그대로 남아있는 요양원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인조대리석으로 두른 아치형 창문도 웨딩홀일 때 외관 그대로인 모양이었다. 요양원 앞 도로의 보도블록 틈사이로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습하고 무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근처에 바다가 있기는 한 것일까, 문득 바람결에 말린 미역 냄새가 났다. 내 생일 무렵이면 고모는 질이 좋은 미역과 김과 건어물을 보냈다. 남편은 한국에서 온 박스를 풀자마자 코를 쥐며 도망을 쳤다. 쓰레기통에 쳐 박혀 있던 미역과 김 봉지를 다시 가져와 숨겨 놓은 적도 있었다.

나는 구급차 한 대가 서 있는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계단을 오르자 화강암 기둥과 아치형 출입구가 나타났다. 한 때는 하객들로 붐볐을 웨딩홀 출입구 앞은 정적만 감돌았다. 손잡이 잠금장치 쪽에 달린 벨을 누르자 직원이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면회 오셨나요? 여기 어르신 성함이랑 오신 분 관계하고 이름 적어 주세요.”

직원이 내가 적은 서류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 미국에 살고 있다던 김종학 어르신 따님이시군요. 먼 길 오셨네요. 접견실에 계시면 모시고 내려올게요. 어르신이 오늘 컨디션이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혹시 아버지가 지금 어떤 상태이신지 알 수 있을까요? 이틀 전에 귀국해서 자세한 상황을 전해 듣지 못했거든요.”

어르신은 여기 오신지는 1년 쯤 되셨고요. 혈관성 치매 때문에 기억은 오락가락 하시지만 몸은 처음 오셨을 때보다 아주 건강해지셨네요. 저희한테 오시기 전에 요양병원에 계셨고, 발견되셨을 때는 심한 영양실조에다 폐렴까지 앓고 있었다고 하대요.”

고모는 아버지가 정년퇴직 후에 목포에서 동료와 낚싯배 대여업을 하고 있다고 했었다. 고모와 연락이 끊긴 동안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직원이 엘리베이터 누름버튼 옆에 부착된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어르신들이 대부분이 혼자 나가면 찾아오시기 힘든 분들이라서 까다롭게 관리를 하고 있답니다.”

엘리베이터에까지 달린 잠금장치에 놀라는 나를 보고 직원이 설명을 했다. 시아버지가 있던 요양원은 출입이나 방문이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한국전 참전 군인이었던 시아버지는 처음부터 나를 외면했다. 그가 경험했던 전쟁 속 한국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는 나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춰 섰다.

김종학 어르신 따님이세요. 어르신께 안내해 드리세요.”

직원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요양보호사에게 말했다. 등 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넓은 홀에는 소파와 텔레비전과 여러 개의 탁자가 놓여 있었다. 홀을 중심으로 복도 양 옆으로는 병실이 이어졌다.

노인 서 너 명이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고 있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인들은 짧은 머리카락과 흐릿한 눈빛과 야윈 몸에 똑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알아 볼 자신이 없어졌다. 불안이 몰려왔다. 긴 아치형 창에서 햇빛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김종학 어르신은 오늘도 저기 계시네요.”

요양보호사가 홀을 등진 채 창가에 서 있는 노인을 가리켰다. 나는 발걸음을 떼놓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보다 몸피가 삼분의 일로 줄어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엉거주춤하니 서서 한 손으로는 창틀을 짚고 유리창을 닦고 있었다. 아버지는 창을 닦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계속 원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나 깔끔한 어르신인지 모른당게요, 정신이 맑을 때는 요양원 유리창이랑 화장실 거울까지 죄다 얼룩 하나 없이 닦아 놓으신당게요.”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나는 천천히 아버지에게로 걸어갔다. 오래 전 지금처럼 일에 집중하던 아버지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버지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에서는 자부심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 아버지의 무너진 금세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어르신, 따님이 찾아 왔고만요.”

요양보호사가 아버지 등에다 대고 말했다. 아버지가 몸을 흔들며 천천히 돌아섰다. 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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