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엄마 박완서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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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엄마 박완서의 부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2.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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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호원숙/ 세미콜론/ 2021122일 발행)

 

[목포시민신문]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건 참을 수 있지만, 맛없는 건 절대로 안 먹는다.

어머니의 산문집 호미음식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읽을 때마다 미소가 절로 번진다. 식구들에게 절대로 맛없는 것을 먹이지 않았던 어머니 생각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고개를 숙이게 된다.’ (58p)

박완서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딸 호원숙이 쓴 책이다. 작가 박완서의 문학 세계를 되짚으며 추모하는 글이 아니라 의외로 가벼운 요리 에세이다. 요란하고 거창한 걸 싫어했던 박완서 선생의 성정에 딱 맞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추모글과 평전 따위를 써서 묵직한 책을 냈더라면 굳이 내 손에 쥐지 않았을 것이다. 딸의 기억 속에 남은 엄마 박완서의 부엌 이야기라니.

어쩌면 이 책은 한 권의 레시피이기도 하다. 호원숙과 박완서와 박완서의 엄마까지 3대에 걸친 요리 장면들이 박완서의 문장을 소환하며 고스란히 제 몫의 추모를 하고 있다.

지인이 보내준 커다란 민어를 다룰 줄 몰라 난감해하다가 엄마의 소설 속 장면을 생각해내고는 요리책 읽듯 소설을 다시 읽어가며 척척 손질을 해내는가 하면, 여러 번 만들지는 않았으나 특별했던 멘보샤의 감미로운 풍미와 감촉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어느 글에서도 소설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을 의아해하며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추억한다. 아버지가 등장하는 글은 딱 이 한 편 뿐인데,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한 문장이 제목으로 정해진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정확하게 만 일곱 살이 되기 전의 기억을 꽤 많이 하고 있는 데다가, 훗날, 사실은 먼 훗날에 어머니의 글에서 그 기억의 편린을 맞추어볼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특별한 행운이다.’ (111p)

소설 속 대사에서 할머니의 어록을 발견하기도 하고, 엄마와 함께 갔던 시장의 풍경과 소리와 냄새를 생생한 엄마의 묘사로 다시 만나기도 한다. 우아하고 정갈하고 위엄 있고 자신만만했던 엄마의 모습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확인하기도 하지만 부엌에 서서 손끝에 힘을 주고 요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도 발견한다. 엄마의 10주기를 추모하며 글을 쓴 딸도 손주들에게는 뭇국에 밥 말아 주는 다정한 할머니이다. 어떤 기억, 어떤 문장의 엄마는 저자보다 젊은 여자였다. 엄마는 어떻게 그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음식을 만들었을까. 엄마가 딸처럼 기특해지는 것은 존경보다 깊은 경외가 아닐까 싶다.

 

동네산책 책방지기/윤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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