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어차피 섬 떠날건데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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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 읽기-소설 본상 조계희]어차피 섬 떠날건데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2.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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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빛을 투영시키지 못하는 아버지의 눈빛은 탁했다. 아버지는 제자리걸음을 하듯 뒤돌아서서 다시 유리창을 닦기 시작했다.

오늘은 기분이 쪼금 안 좋으시네요이. 저러시다가도 잠깐 정신이 맑아지시기도 하거등요. 좀 기다려 보시게요.”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버지 어깨 위로 기울어져가는 여름 볕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난 세월동안 아버지에게서 무엇이 빠져나가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 등 너머로 먼 바다와 섬들이 보였다.

아버지는 매일 저 바다와 섬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다시 섬과 섬을 오가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 해 봄날의 기억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오빠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골반 뼈가 부러졌다. 수술을 하고 재활을 마치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는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다니던 공장을 그만 두고 병원에서 오빠를 간병했다. 집과 병원을 오가기 벅찼던 엄마는 나를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섬에 보내기로 했다.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여객선에 올랐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곳을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뱃멀미 때문에 토하고 늘어져 있었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오징어 다리를 주었다. 신기하게도 오징어다리를 잘근잘근 씹다보니 멀미가 사라졌다. 여객선은 여러 군데 섬을 거쳐 가느라 해질 녘에야 아버지가 있는 섬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보자 눈물이 났다.

배에서 내리자 선착장에서부터 바로 경사가 급한 길이었다. 길은 고개를 한껏 젖혀서 올려다 봐야할 만큼 가팔랐다. 몇 걸음 못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멈춰 서자 아버지가 등을 내밀며 쭈그려 앉았다. 내가 업혀 다닐 나이가 한참 지났다는 것을 아버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손까지 뿌리쳤다. 아버지가 무안해 했지만 나는 모른 척 했다. 띄엄띄엄 지붕이 낮은 집들이 있는 언덕길을 오르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바다에서 수없이 많은 황금빛 비늘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 눈 안으로도 금빛물결이 밀려들어 실눈을 떠야만 했다.

아버지는 언덕 중간쯤에 바다를 등지고 돌아앉은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푸른 이끼가 낀 낮은 돌담 너머로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금빛 바다 위의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 같아보였다.

-아이고, 김 선상 애기가 곱게 생겼네. 먼 길 오니라 욕봤다. 얼른 들어가자잉.

얼굴에 굵은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가 거친 손으로 나를 쓰다듬었다. 할머니한테서 오래 삭힌 젓갈냄새와 생선 비린내가 났다.

-내일은 학교에 가서 전학 서류도 내고 미리 선생님도 만나보자. 5,6학년이 한 반에서 공부한다고 하더라. 여기 생활도 재미있을 거야. 바다에서 낚시도 하고. 집에 갈 때 가져갔던 생선들 다 아빠가 잡은 거야.

아버지가 평소와 다르게 말을 많이 했다. 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집에 오면 손님 같았다. 엄마가 뭔가 시키거나 요구를 하면 얼굴을 붉히며 당황했다. 아버지가 갈수록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것을 어색해 하는 것 같아서 점점 아버지가 오는 것이 반갑지 않았다. 나는 섬에서 본 아버지가 낯설었다.

섬에서는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저녁을 먹고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맡에서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으로 푸른 빛줄기가 규칙적으로 지나갔다. 마취에서 깬 창백한 오빠 얼굴과 피로에 찌든 엄마 얼굴이 지나가는 불빛 속에서 떠올랐다.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아버지도 여러 번 몸을 뒤척였다.

다음 날 아침에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하는 사이렌 소리에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방문을 열고 나와 보니 마당까지 뿌연 안개가 넘실대고 있었다. 돌담 너머로 안개 띠가 둘러진 바다가 보였다. 가까운 섬은 고깔모자를 쓴 것처럼 섬의 꼭대기만 살짝 보였다.

-김 선생은 안개 땜시 등대에 갔다 온다고 했응게 곧 올 것이여. 저 소리는 느그 아부지가 안개가 많이 꼈다고 배한테 조심 허라고 보내는 신호여.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말했다. 해가 나면서 안개가 서서히 사라졌다. 아버지가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은 채 돌아왔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버지와 집을 나섰다. 장난감 상자처럼 작은 분교 교무실에서 전학 수속을 마쳤다. 오빠만 다 나으면 떠날 섬이라 생각하니 학교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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