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 김형만의 한국유학 이야기] 단군 시대 천교, 유.불교에 앞서 민족종교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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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김형만의 한국유학 이야기] 단군 시대 천교, 유.불교에 앞서 민족종교로 존재했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2.2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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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한국 고유사상으로 신라 화랑도 지도이념 풍류도 주창
이병도, 풍류도와 관계된 고대사회 삶의 형식 ‘도(徒)’로 풀이
화랑도 신도(神道)의 사상 한층 실제화 구체화 인격화로 해석
도하 김형만 한학자

[목포시민신문] 우리는 대개 무슨 일이 잘못되면 그것이 개인의 잘못이든, 국가나 정치세력의 잘못이든, 그 원인을 나에게서,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에서 찾고, 또 밖에서 찾으며 책임을 미루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어제의 나의, 우리의 언행이 바로 오늘의 나의, 우리의 과거 행적인데도 말이다.

이것이 과거의 잘못을 은감(殷鑑)’으로 거울삼아 오늘에 비추어 보고 경계하며, 더 나은 새 미래를 창조하고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찌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지난해에, 평소 유학(儒學)을 강명(講明)해온 사람으로서 유학이 이 땅에 수용된 이래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 왔으며 그것이 끼친 영향은 어떠했는지,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것, 배울 것은 무엇이고 버리고 반성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궁구한 나머지, 한국유학 그 역정과 영향(부제: 민주시민을 위한 한국유학 발전사)이라는 한편의 서책을 편술하여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이번에 목포시민신문의 귀한 지면을 빌어, 우리 민국(民國)의 앞날을 근심 걱정하는 우환의식(憂患意識)에서, 여러분과 함께 오늘의 삶을, 내일의 민생(民生)을 보다 알차게 영위해 가는 지혜와 지남(指南)을 얻어, 민국(民國)의 앞날에 대안을 모색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위 서책의 대강을 몇 편의 글로 축약해 올린다.<편집주>

  • 원시 사상과 유학의 전래·수용

지금에 중국 유학과 한국 유학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그 유학의 형성 발전 과정이 있어왔고, 한국 역시 다른 과정을 밟아왔기 때문이다. 춘추시대에 공자에 의해 집대성된 유학은 공자 이전에 이미 요·순임금 때로부터 하()·()·() 삼대(三代) 이래 축적된 상고사상(上古思想)이 유교 형성의 선하(先河)를 이루었다. 마찬가지로 유교가 우리에게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도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때문에 먼저 상고시대로부터 배태되어 우리 선인(先人)들의 사유의 틀을 이루었던 우리의 원시 사상의 원형은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것을 고구(考究)해봄으로써 자주적인 유교의 수용이 어느 때 어떻게 가능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려 한다.

도하 김형만 작.

1) 한국 사상의 원형

먼저 한국 원시 사상의 원형으로 애니미즘에 근거한 샤머니즘과 토템이즘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서 이것들과 결합되어 단군신화(檀君神話)가 나타나고, 뒤이어 부족국가들의 건국신화가 발생했다.

특히 고조선 건국신화에 나타나는 단군 사상,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었으며,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이념으로, 대한민국의 교육법이 정한 교육의 기본 이념이자,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최고 이념으로, 윤리의식과 사상적 전통을 이루고 있다.

원시민족은 자연의 힘을 숭배하여 종교심(宗敎心) 또한 여기에서 생기게 되는데, 조선 상고의 인민도 동일한 상태에 있었다. 이것이 곧 저들이 하늘을 공경하며 혹 태양과 영성(靈星 :농사를 주관하는 별)을 숭배하며 땅의 신령과 국조신(國祖神)에 대하여 다신적(多神的) 신앙으로 제사와 기도를 행하게 된 까닭이다.

이러한 신도(神道)’의 신앙형식은 제사로 나타났으니,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맥의 무천(舞天), 백제의 교천(郊天)이 다 이러한 것들이다.

최치원은 난랑비서(鸞郎碑序)에서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어, 풍류(風流)라 한다. 그 설교(設敎)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포함한 것으로서 군생(群生)을 접화(接化)한다. 또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께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의 사구(司寇) 공자(孔子)의 종지이고, 무위지사(無爲之事)에 처하고 불언지교(不言之敎)를 행하는 것은 주()의 주사(柱史) 노자(老子)의 종지이며,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 석가(釋迦)의 교화이다.’라고 하여, 한국 고유사상으로서 신라 화랑도의 지도이념이었던, 풍류도의 실상에 대해 밝혔다.

이처럼 풍류도는 현묘한 도(현묘지도(玄妙之道))와 뭇 중생과 접하여 그들을 생기 나게 변화시킴(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는 두 가지 고유한 내용이 있고, 동시에 거기에 유()·()·()의 삼교(三敎)가 접목되어 있다. 최치원의 기록이 불충분하고 또 이른바 선사의 소실 등으로 우리는 풍류도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최치원이 화랑도(花郞徒)의 창립 목적과 교육정신을 말하는 대목에 풍류도(風流道)(풍월도(風月道))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의 삶이 겨냥하는 것과 사유와의 원본적 관계로서 풍류도는 화랑도(花郞道)의 중핵이 되었음을 직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남겨진 삶의 형식들인 제도·사상·민속 등에 의하여 그 풍류도를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병도는 풍류도와 관계되는 고대사회의 삶의 거주 형식을 ()의 개념으로 풀이한다. 그래서 신라의 화랑도(花郞徒), 고구려의 조백(皂帛徒)도 그런 삶의 형식을 취한 공동적 의식의 정신에 지나지 않다. () 개념으로 집약되는 고대사회의 공동체는 곧 마을두레의 개념으로 탈바꿈됩니다. 이런 두레의 구조적 짜임새는 상당히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류도가 단군신화의 고신도(古神道)’적 사유와 접목되면서 두레라는 삶의 형식을 통하여 현묘지도(玄妙之道)와 접화군생(接化群生)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그런 접화군생(接化群生)이 생활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신라의 한가위,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 마한의 소도(蘇塗).

한편 풍류도의 사상이 단군 사상과 동일한 정신사적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논파한 이가 사학자 신채호였다. 그는 낭가사상(郞家思想)’의 퇴폐는 묘청이 김부식에게 패배한데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낭가(郞家)가 유가(儒家)에 밀려나면서 단군정신(檀君精神)을 숭상하는 풍류정신(風流精神)이 역사의 뒤안길에 숨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최남선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예로부터 고유 신앙이 있어 그 명칭은 밝의 뉘’, 뒤에 변하여 부루요 그 주지는 천도(天道)를 실현함에 있었는데 이 민족교(民族敎)는 유교 불교에 앞서서 있어 오고 또 유교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그대로 나란히 존립해오던 것이다. 천도를 믿고 따름으로써 종지를 삼는 조선고유신앙의 근본은 국조 단군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단군에서 나온 조선 고대의 신도(神道)는 신라 이후에 화랑국선(花郞國仙)의 국가적 활동으로 꽃이 핀 뒤에 그 종교적 방면은 차츰 불교에 눌리고 교화적 방면은 유교에 빼앗기고서 고려시절에는 다만 국가의 태평을 장식하는 의식(儀式)으로 변하고 이씨조선에서는 그 유풍여운이 겨우 민속무습(民俗巫習) 가운데 떨어져 있더니 선조, 인조의 사이에 거푸 큰 국난을 치러서 인심이 불안에 빠지고 이어 영조, 정조 이후에 서방으로부터 천주학이 들어와서 정신계가 혼란하여짐에 미쳐 민족의 정신적 반발력이 고개를 쳐들어서 여러 가지 신앙현상을 낳으니 동학운동이 그 중의 하나요, 고종조에 자주 외국의 침릉을 받고 마침내 국운의 기울어짐을 걷잡을 수 없이 되자 민족정신이 크게 흥분하여 마침내 전통적 고유신앙의 부흥을 바라는 기풍이 날로 더하였다. 이 기운에 응하여 나철(羅喆), 오혁(吳赫) 등이 단군교(檀君敎)의 중광을 포명하고 이어 대종교(大倧敎)’라고 명칭을 바꿔서 크게 국조숭배에 의한 전통수호를 주창하여 일대 인심의 귀향하는 바가 되었으며 조국 광복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것이다.

어떻든 풍월도(風月道) 풍류도(風流道)가 신도(神道)의 이상을 가리키고 접응(接應)한 것이라고 넉넉히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풍류도와 신도의 정신을 비교하여 볼 때에 그 사이에 은연히 둘 사이에는 자연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것은 신도(神道)의 진실(眞實), 순선(純善), 청미(淸美)의 이상이 화랑도(花郞道)의 인격교육에 유사근사한 점이 있는 점이다.

그러므로 어느 각도로 보더라도, 화랑도는 신도의 한 방면이요 한 형태니, 알기 쉽게 말하자면 화랑도는 신도의 이상을 한층 실제화 구체화 인격화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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