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무담시 마음이 가는 사람, 명발당 고 윤정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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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 무담시 마음이 가는 사람, 명발당 고 윤정현 시인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3.1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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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살다 보면, 무담시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다. 명발당, 고 윤정현 시인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도 아니고, 또 딱히 마음이 쓰일 만큼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니다. 그의 맑고 슬픈 눈빛과 사연들이 아파 보여 애써 피해가고 싶었던 사람.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아릿한 사람이다. 그가 떠난 후 보름쯤 지났을까? 삼월 초, 봄비 내리는 날 강진 향촌마을에 있는 명발당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시인이 살아있을 때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곳이다.

시인이 떠난 쓸쓸한 명발당. 주인 없는 신발들과 장작들과 봄꽃들이 봄비를 맞고 있었다. 가끔 페이스북에 올라온 명발당 소식을 보고 있었다. 종갓집 이야기라던가, 향촌마을 사람들 이야기, 그곳을 찾아간 문인들 이야기, 혼자 쓸쓸하게 사는 이야기, 또 사진으로 보는 꽃소식들이다. 그곳에 가서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명발당이라는 명성과는 달리 초라한 지붕, 흙담이 다 사라져 담장도 없이 잘 갖춰지지 않는 집 모습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깊은 사연 뒤에 숨겨진 진실 같은 것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시인의 뒷모습 같았다. 꽃들이 만발한 여름이었다면, 사람이 없어도 조금 덜 쓸쓸하게 느꼈을까?

그를 처음 본 것은 몇 해 전 입춘 전야, 예고 없는 폭설이 내렸던 날이다. 그날은 해남 일지암에서 김종삼 음악회 담소가 열린 날이었다. 서울과 광주 목포 등 문인들이 많이 모였다. 그때는 여러 사람 틈에 있는 한 사람이었다. 그 후 몇 번 선생님들과 자리를 하게 되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늘 최하림 시인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는 최하림 시인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던 터라 내심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나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그 후 나에게도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잠시 마음의 문이 닫혀 있었다.

그는 2020파도가 밀려와 달이 되는 곳이라는 윤정현 산문집을 냈다. 나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 남긴 이 책을 산문집이라고 하지 않고 시집이라고 부르고 싶다. 글 편편이 그의 아픔이 묻어나 아린 책이다. 비 오는 날 동행해 준 내 벗은 한 번도 만난 적도 알지도 못한 시인이 살던 곳에서 나보다 더 아파했다. 우리는 한동안 그 산문집을 마음으로 읽었다. 정말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는 나에게 산문집을 두 번이나 보내주셨다. 작년 초판본을 보내주셨고, 또 그믐날 사인을 한 책이 그의 부고 소식보다 더 늦은 219일 아침에 나의 손에 도착했다. 명발당 뒤란 동백꽃은 더 붉게 피어 떨어져 있고, 주인 없는 술독은 비를 맞고 있었다.

평소 연락을 하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설날이 되기 전 시인은 뜬금없이 안부를 물으셨다. 나의 안부보다는 최하림 시인에 관한 소식과 여러 상황이 궁금하신 것 같았다. 그는 최하림 시인을 마음속으로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 하셨고, 최하림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지면 일회성이 아닌 그의 시 정신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작년 최하림 10주년 행사가 서울에서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참석하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내 마음과 정성이 그곳에 닿지 못했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을 뿐이다. 그날 서울에 가지 못한 나는 상처받은 맘을 다스리기 위해 구례 사성암으로 가버렸다. 얼마 전 최하림 시인의 생가가 있는 팔금 원산리와 추포도, 노만사 절에 다녀왔다. 아직도 주변만 서성거리고 있는 내 모습. 그렇지만 시인이 바라는 대로 가장 적확한 시간에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놓이리라는 것을 믿는다.

그는 고등학교 때 1980년 오월 광주를 만났다. 시인을 꿈꾸며 전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진학했고, 광주항쟁 이야기를 담은 장편시 들불야학등을 발표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그 후 광주비엔날레에서 일하다 과로로 쓰러져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다. 200930년 동안의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강진 고향으로 돌아와 명발당에 거처를 정하고 남도 문화예술에 관한 미학적 탐색이 깃든 글쓰기를 하셨다. 윤정현 시인의 생애는 짧았지만, 시인은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못해 가슴앓이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잊혀 가고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소외된 것들에 더 따뜻한 눈을 갖고 있었다. 요즘 사람 같지 않은 그의 예리한 비판력과 서늘함이 불편하면서도 좋았다. 이제 파도가 밀려와 달이 되는 곳으로 떠나 돌아오지 못할 사람. 오래 많은 사람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약력

2011문학과의식등단. 시집 가족사진, 목포역 블루스있음.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전남도립도서관, 목포문학관 상주작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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