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와 함께-송정미 대표] 미얀마 절망과 죽음에 맞서 일어서는 절규에 연대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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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와 함께-송정미 대표] 미얀마 절망과 죽음에 맞서 일어서는 절규에 연대하는 사람이고 싶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3.2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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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송정미 대표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송정미 대표

[목포시민신문] 지금 미얀마의 국민들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언제 어떻게 될 지 단 몇 분 후도 알 수 없는 생명의 끈을 잡고 있으면서, 60년 동안 지속된 군부 장기 집권을 끝장내고자 자신의 팔뚝에 유서와 신체 기증 문자를 새기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하루하루 미얀마의 소식을 들으며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쭈빗쭈빗 일어선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미얀마 국민들은 지금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고 한 여름의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군부 정권을 참을 수 없어,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과 집단적 이익을 위해 55백만 국민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고 있는 군부 정권을 끝장내야 된다는 일념으로 칠흑 같은 어둠의 시대에서 벗어나고자 싸우고 있다.

한 집단의 무리들이 군부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무한한 권력을 유지하고자 그들 집단의 무한한 이권을 추구하고자 국민의 목숨을 한낱 파리 목숨처럼 여기며 집단학살을 수도 없이 저질렀던 아픔의 역사를 대한민국은 지금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운동활동가가 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 대표에게 보낸 사진. 현재 마얀마 양곤의 모습.

1948년 여순 양민 학살, 1948년 제주 양민 학살과 43 항쟁, 1960년 이승만 정권 타도 419혁명을 짓밟은 박정희 정권의 군부 쿠데타에 의한 장기 집권, 1979년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에 의한 군부 쿠데타, 1980518 광주 민중 항쟁, 1987610 민주화운동 등 우리나라도 1945년 해방 이후 군부를 등에 지고 저지른 정권의 만행, 군사 정권의 만행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오늘 날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미얀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운동활동가가 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 대표에게 보낸 사진. 현재 마얀마 양곤의 모습.

이승만을 419 혁명으로 몰아내고 518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을 재판정에 세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모습의 형태를 띠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으며 가족들이 겪은 피눈물과 고통의 시간, 가족을 잃은 그 힘듦을 또 어떻게 견디고 겪어내고 있는지 우리나라 국민들은 보고 듣고 겪으면서 살아오고 있다.

우리의 삶이 이러한데 어찌 미얀마 국민들의 군부 정권의 저 치 떨리는 행위에 대한 분노의 함성을 남의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미얀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운동활동가가 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 대표에게 보낸 사진. 현재 마얀마 양곤의 모습.

미얀마는 1886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강제점령기에 있었으며, 미얀마의 고통은 영국의 미얀마 분할통치에서 비롯되었다. 미얀마 민족 구성의 60%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소수 민족을 분리하여 소수 민족으로 하여금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을 견제하게 하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상호간에 증오와 분노가 영국 강제점령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소수 민족이 135개이고, 언어도 민족에 따라 제각각이다.

미얀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운동활동가가 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 대표에게 보낸 사진. 현재 마얀마 양곤의 모습.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미얀마는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민족이 주류가 되었고 버마민족이 거주하는 지역 Region과 소수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 state로 구분되어 있을 만큼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이 내재화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 소수민족끼리의 갈등, 지배 군부 세력과 소수민족과의 지배, 피지배 관계, 소수 민족 군부가 저지르는 반인권적인 폭력과 지배 군부 세력의 소수 민족에 대한 무력지배, 민간인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 방화 집단 강간 등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이 끊이지 않는 반인권적인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의지는 계속되었다.

1962년 군부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군부에 넘어가게 된 이후 군부의 부패와 무력통치 실시로 1988년 미얀마 국민은 8888항쟁(198888일 대규모 시위)을 통해 일시적으로 군부정권을 무너뜨렸으나 곧바로 918일 군부는 바로 쿠데타를 다시 일으켜 재집권에 성공한다. 이후 군부정권은 우민화 정책을 실시하여 3년간 대학의 문을 닫는 등 국민 압살정책을 지속한다. 현재 미얀마 국민의 평균 교육 수준은 중졸 정도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1,400달러 정도로 우리나라 금액으로 환산하면 17십만원 정도로 UN에서 인정한 세계 최빈국이다.

 

미얀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운동활동가가 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 대표에게 보낸 사진. 현재 마얀마 양곤의 모습.

미얀마 국민들은 끊임없이 군부에 저항하여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민주주의를 위한 민족동맹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에 승리를 안겨줬으나 군부는 총선을 무효로 돌리고 집권을 이어갔다. 국제적인 압력과 압박에 군부는 새로운 헌법을 준비하고 2010년 총선에서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고, 2010년 형식적인 민간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NLD가 참여하지 않은 총선이었지만 민간정부는 형식적이라도 개방 정책을 내세웠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미얀마 사회의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2015년은 NLD가 참여하는 실질적인 미얀마의 첫 총선이 치러졌고, NLD가 압승하게 되었으며 아웅산 수치는 국가고문으로 실권을 잡게 되었다. 실질적 권력은 여전히 군부가 가지고 있었지만 형식적 권력은 민간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불안한 권력 분점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의 헌법은 여전히 군부세력의 집권이 용인되는 것이었으며, 군부는 막후에서 여전히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어떤 형식으로든 미얀마는 형식적 민간정부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이번에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이제 이러한 막후에서 행하는 권력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다시 전면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얀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운동활동가가 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 대표에게 보낸 사진. 현재 마얀마 양곤의 모습.

미얀마 군부가 지금까지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군부와 결탁한 나라와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군부가 막대한 부를 형성하고 그들의 권력이 유지 될 수 있을 정도로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 국가와 기업은 어디인가?

미얀마 국민들의 생명을 짓밟으며 수 십 년 간 양민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에 대해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이든 이제 손을 끊어야 된다. 아무리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 하더라도 타민족의 생명을 재물 삼아 이익을 취할 권리는 그 어떤 국가도, 그 어떤 기업도, 그 어떤 개인도 가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온 민주주의이며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하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무력 강제 점령을 당한 나라들이 약탈과 수탈의 대상이 되고 자신의 나라에서 자기 나라의 말을 잃고 감시당하며 자신이 일군 땅과 자원을 모두 강탈당한 나라들이 지금도 이러한 강대국들의 먹잇감이 되어 가장 힘없는 국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분노할 수 있어야 된다.

기나 긴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사람답게 살고 싶은 열망은 멈출 수가 없다. 하고 싶은 일과 활동을 하며,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왕래하며, 사회적 권리를 행사하고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며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느 사회이든 이를 통제하는 사회는 반민주적이며 반인권적이며 그러한 정권은 지구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 어떤 정권도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될 수는 없다.

미얀마의 일부 경찰들이 차마 같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고 하며 국경을 넘어 인도로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다시는 군부정권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 라고 하며 죽어가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속옷들을 빨래 줄에 내걸며 미얀마 군인들의 접근을 막아내는 방법까지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은 하루하루 미얀마의 소식에 숨을 죽이며 가슴이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미얀마 여성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광주에 사는 활동가는 미얀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 친구들의 소식이 끊길 때마다 생사를 확인 할 수 없어 숨이 막힌다고 했다. 핸드폰을 손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의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한숨을 쉬면서도 친구의 무사함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미얀마의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연대하는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의 희생과 투쟁이 꺾이지 않도록 좀 더 끈끈하게 좀 더 다양하게 연대하면서 국제 연대의 힘으로 미얀마에 민주주의 봄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봄 우리 함께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미얀마 국민과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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