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인숙 칼럼니스트] 길고양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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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인숙 칼럼니스트] 길고양이 보라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4.0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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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택시기사님이 오셔서 길고양이 사료를 산다. 고양이가 창고에 새끼를 낳아버렸다며 투덜거렸다. 어떤 쉼터에 전화하니 어느 정도 자라면 나간다고 내버려 두라고 했다고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다. 나는 같은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자랄 때 까지 만이라도 아이들을 창고에서 지내게 할 수는 없는지 물었다. 언제든 있어도 상관은 없지만, 마당에 큰 개가 있는데 고양이를 물려 죽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기사님은 어미 고양이를 목줄로 창고에 묶어 놨다고 했다. 자신의 집에서 고양이가 또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할 까봐 하루하루가 좌불안석이라는 말에 나는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 의미의 투덜거림이었다면 괜찮았다.

어느 날 나타난 자그마한 고양이는 마당에 묶어놓은 큰 개의 밥을 먹으며 지내더란다. 무서운지도 모르고 개밥그릇에 코를 박고 그렇게 한참을 먹었다고 했다. 배고픔은 작은 고양이를 겁 없게 만들었고, 기어이 그 집 창고에 출산까지 떡하니 해놓은 것이다. 창고에 새끼를 낳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아이를 내칠 수가 없어서 길고양이 사료까지 사러 왔다는 말에 아이를 그곳에 더 둘 수가 없었다. 데려오세요.

다음 날, 기사님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먼지가 뽀얗게 쌓인 이동장에 어미와 새끼들을 넣어서 데리고 왔다. 말대로 고양이의 목에는 작은 방울과 긴 목줄이 묶여 있었다. 아이는 이제 7개월 정도의 크기로 어미도 아직 어린 고양이었다. 아기가 아기를 낳은 격이었다. 그 와중에 새끼 다섯 마리는 오동통하니 잘 키워놓은 것을 보니 이 작은 어미고양이가 더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래, 잘 왔다. 여기서 지내다 좋은 가족을 만나보자.

그렇게 나는 다섯 마리의 새끼와 꼬리가 꺾인 어미고양이와의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어미의 이름을 보라라고 이름 지었다. 새끼들은 도레미파솔.

 

여기저기에서 새끼고양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람에게도 좋은 계절은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에게도 좋은 계절이다. 넉넉한 햇살은 인색한 인간들에게도, 길에서 사는 아이들에게도 골고루 인심을 쓴다. 길고양이들은 봄과 가을에 대체적으로 출산을 하게 된다. 이즈음이 새끼고양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길고양이들의 삶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고통일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축복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시끄럽고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그 작은 꼬물거리는 생명을 검은 봉투에 담아 내다버리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도 있고, 어미가 밥 먹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새끼고양이를 발견한 즉시 냅다 들고 유기동물보호소에 신고를 해서 잡아가 다 죽이는 인간도 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하고 어미와 생이별을 한 새끼고양이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해도 위험한데 유기동물보호소라니. 발견하면 제발 그냥 두고, 어미가 나타나는지 확인을 해주길 바란다. 어미가 나갔다 새끼들을 그대로 두고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아이들을 구조해야 한다. 어미는 변고를 당하지 않는 이상, 새끼들에게 돌아온다.

 

바야흐로 시간은 흘러, 또 다시 아깽이의 계절이 도래하였다. 이 일을 하면서 이 계절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들이 세계를 존중하여야 하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들이 있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다. 지금 내가 보라와 아가들을 맞이한 것처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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