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김경완 시민기자] 한 사람이 바뀌니까 지옥이 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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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광장-김경완 시민기자] 한 사람이 바뀌니까 지옥이 천국으로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4.1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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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의 맑은 물 조차 부패의 희생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전쟁 후 1953년 입대 부대원 하수도 식수로 사용
바뀐 부대장 병사 위한 식수원 개발 윗선 미운털
‘한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교훈얻어

[목포시민신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 달 후 바로 입대했단다. 육군 중위 계급장을 달고 군의관으로 임관한 것이지. 그때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이었어. 아무래도 전쟁 후유증이 많아 여러 가지로 어수선하고 힘들 때였지.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것도 부족하거나 좋지 않았단다. 어느 정도였냐면 마산 군의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어. 이제는 마산이라는 이름도 사라지고 창원으로 통합되었더구나. 군의학교는 국군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돼. 내 발이 어찌나 크던지 맞는 군화가 없었어. 하는 수 없이 마산 시내에 나가 내 발에 맞는 헌 군화를 구해 신어야 했단다. 또 하나 힘들었던 것은 한창 식욕이 왕성할 때인데 세끼 나오는 밥이 적어 늘 배가 고팠던 것이야. 마침 함께 입대한 대학 동기인 승표라는 덩치 작은 친구가 매일같이 밥을 남겨 그것으로 고픈 배를 채우기도 했지.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해 줄께. 이 사건은 내 인생에 무척 중요한 교훈을 주었단다.

논산훈련소의 신체검사 반에 근무할 때였지. 어느 날 주번 사령을 맡아 근무하면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됐어. 훈련병들이 어찌나 목이 마르던지 뚜껑을 덮지 않은 하수도에 흐르는 더러운 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 거야. 당시 먹는 물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더러운 물을 마실 정도인지는 몰랐어.

그래서 훈련병들이 마시는 물이 필요하다고 근무일지에 기록해 두었지. 우물 한 두 개만 파면 깨끗한 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다음날 아침이 되었어. 부대장이 아침 점호시간에 엄한 모습으로 나타났지. 그리고 훈련병과 사병들을 향해 묻는 거야.

너희들 중에 물이 부족해 세수도 못하고, 물 못 마시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

“....”

그 분위기에서 훈련병들이 손을 들 수 있었겠어?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지. 그랬더니 부대장이 그러는 거야.

봐라. 아무 문제도 없잖아. 그리고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는 법이야

“......”

이상, 점호 끝

주번 사령으로서의 내 건의는 보기 좋게 무시당하고 말았어. 그 후로도 여전히 훈련병들과 사병들은 그 어려운 처지에서 힘겨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얼마 후 부대장이 바뀌게 되었단다. 새로 부임한 이북 출신의 치과장교인 김낙응 대령은 물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당장 우물 공사를 시작했어.

우물이 세 개나 만들어졌으니 어떻게 되었겠어? 내무반마다 걸려 있는 물통에는 먹는 물이 넘쳐 나게 되었지. 그 전에는 모두 빈 통이었는데 말이야. 부대원들이 얼마나 행복했겠어? 그럼, 지옥이 천국으로 변한거지.

그럼 왜 이전 부대장은 마실 물조차 없는 지옥으로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 그 당시 매점(PX)에서 팔리는 음료수가 하루 ‘8만원어치라고 했어. 무척 큰돈이었지. 갈증이 생겨야 매점의 음료수가 팔리는 법이잖아. 바로 그거야. 결국 매점 수익을 노리고 먹는 물을 확보하지 않았던 것이야.

그런데 음료수를 마신다고 갈증이 해소되지는 않거든. 모든 사병들이 돈을 넉넉하게 가진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중에 마실 물이 넘쳐나게 되니 매점 음료수 판매량은 바닥으로 떨어졌지. 전혀 장사가 되지 않는 거야. 그때는 보통 정보부대나 상급 부대에 돈을 상납하는 관행이 있었어. 매점에서 돈을 벌어야 상납할 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런데 김 대령이 온 이후 매점 장사가 안되니 어떡해? 얼마 후 부대장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지.

부대장 자리는 큰 선박의 선장처럼 매우 중요한 직책이지. 좋은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있어야 세상이 좋아지는 법이잖아?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오래 있지 못한 것은 그때가 워낙 부정과 부패가 심한 시절이었기 때문이지.

난 그때 한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 물 문제로 보면 부대 전체가 지옥이나 다름 없었는데 한 사람이 바뀌자 지옥이 천당으로 바뀐 것을 보았기 때문이야.

/김경완 사무국장(목포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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