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민신문] 인적 없는 바닷가 개활지에서 차를 세웠다. 바다 위로 서서히 어둠이 내렸고 서치라이트가 바닷가를 훑기 시작했다. 그 불빛 속에 살아온 순간들이 영화 속 장면처럼 떠올랐다. 엄마와 오빠와 함께 했던 시간들, 다니엘이 앞니가 나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을 시작하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서치라이트가 먼 바다를 훑을 때 아버지가 떠올랐다. 창을 훑고 지나가던 등대 불빛이 아버지가 편히 자라고 보내 준 신호처럼 느끼며 잠들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 간절하 게 살고 싶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다니엘을 생각할 때마다 느껴지던 흉통이었다.
“따님, 아버님 친구 분이 찾아오셨네요.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꼭 찾아오시는 분이세요.”
나는 눈물을 닦고 돌아섰다. 요양보호사 뒤쪽에 아버지보다 훨씬 건강하고 젊어 보이는 노인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김혜인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한테 자네 말은 내가 많이 들었네. 미국에서 오는 길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얼른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 친구를 마지막 근무지에서 알게 됐고만. 해남 끄트머리에 목포로 들어가는 바닷길 초입에 있는 목포구 등대였제. 정년퇴직이 얼마 안 남았는디 이 사람이 낚싯배를 사서 운영할 텐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거여. 나중에 딸이 돌아오면 목포앞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자리에다 큰 집을 하나 지어 주고 싶다고 허더라고.”
미국에서 살면서 늘 고모를 통해서 아버지 소식을 들었다. 나에게서 아버지가 희미해졌듯이 아버지도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 믿었다.
“이 사람은 목포를 못 떠나겄다고 허드라고. 자기는 평생 죄 갚음을 허고 살아야 헌다고 하드랑게. 나는 인자는 등대라면 돌아보기도 싫은디 이 사람은 등대가 뵈는 디서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고 허드라고. 집도 남항 등대가 보이는 디다 얻어놨드라고.”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이렇게 되셨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