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박정용 교사] 목포가 사는 길 – 경로의존성 탈피와 신뢰자본 쌓기
상태바
[목포읽기-박정용 교사] 목포가 사는 길 – 경로의존성 탈피와 신뢰자본 쌓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4.21 2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용 문태고등학교 교사

[목포시민신문] ‘변화혹은 바꾸자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키워드가 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변화를 해서 대박을 낸 사례도 많다. 지난 1993년 당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삼성의 핵심 임원 200여명을 모아놓고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이후 삼성그룹 특히 삼성전자를 급속도로 바꿔 지금의 세계적인 기업이 되게 한 신화적인 일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존의 관행을 바꾸는 일이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그 당시 삼성그룹 임직원들의 고충은 상당했다. 우선 남들 다 자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 7시까지 출근하기가 만만치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무리수는 2002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룹 총수의 강력한 의지와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회의 다른 조직들과의 업무시차를 무시한 채 삼성만 혼자서 엇박자 치는 일은 효율성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삼성은 홀로 기존의 다른 모든 조직들이 밟고 있는 경로를 이탈하여 새로움을 추구했던 것인데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변화는 그래서 어려운 일인 것이다. 어쨌거나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난리법석 덕분에 삼성은 내부적인 비효율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고 우리는 그 모습을 지금 보고 있다.

인간이 개인적인 습관이나 사회적인 관습과 제도에서 쉽게 변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이 스탠퍼드 대학의 폴 데이비드 교수와 브라이언 아서 교수였다. 그것이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이론이다. 경로의존성이란 과거의 제도나 관습이 현재에는 잘 맞지 않아 불편함에도 여전히 관성적으로 과거의 것을 답습하려는 인간의 속성을 말한다. 우리 속담에 구관이 명관이다.’ 혹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과거의 익숙함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사회든 비록 그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온갖 구실을 붙여 구태를 유지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물론 그러면서도 변해야 산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경로의존성을 탈피하는 일이 많은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성공적으로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변화하는 일이 귀찮고도 두려울 따름이다. 알면서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만 남는다. 하지만 어쩌랴 변해야 사는 것을.

목포가 변해야 하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면 누가 변해야 하고 누구부터 변해야 하는가? 무엇을 변화시켜야 목포가 사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신뢰이다. 사회적 변화를 꾸준히 그러면서도 역행하지 않고 견인해내는 중요한 요인이 있으니 바로 사회적 신뢰를 쌓는 일이다. 이를 신뢰자본이라고 한다.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은 인적 자본과 물적 자원을 넘어 신뢰 자본을 기본 배경으로 우리나라의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뢰자본이 현대의 하이테크놀로지와 연결되어 경제적 효율을 가져온 예는 많다. 철도 교통이 발달한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의 철도 검표 시스템에 놀란다고 한다. 열차를 타기 전에 그리고 열차에 타서 검표를 하지 않는 것이 매우 신기하다고 한다. 아직도 유럽에서는 과거 우리나라 기차역에서 했던 검표를 한다고 한다. 열차 안에서도 검표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우리나라에서는 기차역과 기차 안에서 여러 단계나 있던 검표가 사라졌을까? 첫째는 IT기술의 발달로 스마트 기기를 활용하여 차장이 우리도 모르게 검표를 하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시스템 때문에 부정한 방법으로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사라졌고 결국 무임승차 하려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는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신뢰가 형성되었으니 여러 단계에서 일하던 검표원도 필요가 없어졌고, 결과적으로 비용이 절감되었다. 신뢰가 쌓이면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비용이 줄어드니 경제도 효율적이 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김병연 교수에 따르면 사회에서 개인 간 신뢰도가 10% 올라가면 경제성장률이 0.8% 상승한다고 한다.

어떻게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전에 사회적 신뢰를 쌓는 방향으로 변화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가 과거 삼성의 임직원들처럼 7시까지 출근할 이유는 없다. 지역사회의 연대를 강화시켜 변화의 기반을 쌓기 위해 신뢰자본을 축적하자는 말이다.

하지만 박태웅 의장은 한국 사회에서 신뢰자본은 열차 개표 시스템에만 국한되어 있고 사회 전반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경제사범 통계를 그 예로 들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경제사범 재판이 1,300여 건 열렸는데 대기업 총수나 최고위 경영자층은 70% 이상이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범행 액수가 300억 원이 넘었던 11명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한다. 하지만 직위가 낮았던 사람들이나 일반인들이 경제사범으로 재판을 받으면 거의 모두가 실형을 선고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한국은 사회적 제도가 신뢰자본을 형성할 만큼 합리적이지 못한 대표적 사례라고 일침을 가했다.

목포가 변화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모르는 시민들은 거의 없다. 다만 건실한 변화를 견인해 내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 사회적 신뢰자본을 쌓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 가는 위의 사례로 살펴볼 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