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 개인의 인격완성과 국가 발전 수호하는 역군 역할
화랑도 1세기동안 융성하며 삼국통일 무사도으로 국난 극복
신채호 한국상고사서 낭가사상 이론적 체계화 통해 민족사상
낭가사상 화랑도와 함께 시대정신 반영… 조국자주독립 승화
[목포시민신문] 화랑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소도제단(蘇塗祭壇)의 무사들이 화랑도가 되었다는 설(신채호), 조선 고유의 신앙단인 부루교단에서 연유하였다는 설(최남선), 원시 미성년집회에서 연유하였다는 설(이기백) 등이 있다.
특히 신채호는, 화랑은 본래 상고 소도제단의 무사 곧 그때의 ‘선비’인데 고구려에서는 조의(皂衣)를 입어 조의선인(皂衣仙人)이라 하고 신라에서는 미모를 취하여 화랑(花郞)이라 하였다. 화랑은 국선(國仙)·선랑(仙郞)·풍류도·풍월도 등으로도 칭하였다. 국선·화랑은 신라 진흥왕이 곧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본뜬 것이며, 또한 화랑의 역사를 모르고 조선사를 말하려 하면 골을 빼고 그 사람의 정신을 찾음과 한가지인 우책이라 하였다.
화랑도는 대체로 원시시대 이래로 촌락 또는 부족 단위로 일정한 연령층의 청소년들이 모여 단체생활과 공동의 의식을 수행하면서,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터득하고 동일한 이상을 추구하며, 가무와 무예를 익히던 연령급단조직(年齡級團組織)이, 신라의 국세가 팽창하여 부족 집단의 규모를 넘어선 정치·군사조직으로 발전하자, 인재의 양성을 목적으로 진흥왕 때에 재편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처음에 나라에서 인재를 알지 못함을 유감으로 여기어 사람들을 끼리끼리 모으고 떼 지어 놀게 하여, 그 행실을 보아 거용(擧用)하려 하였다. 이들은 서로 도의를 닦고, 서로 가락(歌樂)으로 즐겁게 하며, 명산과 대천을 찾아 멀리 가보지 아니한 곳이 없으며, 이로써 그 중의 선한 자를 가리어 조정에 추천하게 되었다. 현상(賢相)과 충신(忠臣), 양장(良將)과 용졸(勇卒)이 이로 말미암아 나왔다’ 하였다. 이로써 보건대 문사(文士)와 무신(武臣)이 화랑에서 길러졌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화랑도는 개인의 인격완성을 도모하는 동시에 국가 발전을 수호하는 역군들이라고 하겠다. 이것이 민족 국가를 공고히 하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화랑도는 그 조직과 수양과정을 통하여, 위로는 국가를 위하고, 아래로는 벗을 위하여 죽으며, 대의를 존중하여 의에 어그러지는 일은 죽음으로써 항거하고, 병석에서 죽는 것을 꺼리고 국가를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함을 찬양하며, 오직 전진이 있을 뿐, 물러섬을 부끄럽게 여겨, 적에 패하면 자결할지언정 포로가 됨을 수치로 아는 등 독특한 기질과 기풍을 연마, 함양하였다.
또한 원광법사가 귀산·추항 두 화랑에게 주었다는 세속오계(事君以忠·事親以孝·交友以信·臨戰無退·殺生有擇)가 화랑의 정신적 기저를 이루었기에 이를 또한 화랑오계라 하였다. 이와 같은 화랑의 기풍은 또한 당시 신라의 종교적 정신세계가 받쳐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나타난다. 그는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설교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실로 이는 삼교(三敎, 儒·佛·道)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군생(群生)을 접화(接化)한다. 또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께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이며 (유교), 무위지사(無爲之事)에 처하고 불언지교(不言之敎)를 행하는 것은 노자의 가르침이며 (도교),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착한 일만 받들어 행하는 것은 석가의 교화 (불교)’라 하여, 한국 고유사상으로서의 화랑도의 지도이념이었던, 풍류도의 실상에 대하여 밝혔던 것이다.
화랑도는 그 창설로부터 삼국통일이 완성된 문무왕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융성하여, 삼국통일의 어려운 시기에는 강한 무사도 정신으로 나타나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통일 후 나라에 태평 시대가 계속되면서 쇠퇴하여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9세기에 들어와 왕권이 약해지고 귀족세력이 강해지자 귀족들의 사병 집단으로 변질되어 갔으며 신라 말에 이르러서는 화랑이란 말은 쓰이지 않고 대신 선랑·국선 등으로만 불렸다. 고려에서도 화랑이란 말은 쓰지 않고 선랑은 팔관회의 무동(舞童)을, 국선은 충렬왕 이후 양반의 군역을 지칭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선랑·국선이란 말은 쓰지 않게 되고 화랑이란 말은 초기에 남무(男巫, 覡)를 가리키게 되어 이를 ‘화랑이’라고 하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무부(巫夫, 兩中), 걸립승의 무동, 사당의 거사 등을 지칭하게 되었다.
신채호에 따르면, ‘낭가사상’은 한민족의 원시종교인 ‘수두제(蘇塗祭)’ 신앙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단군(壇君)은 단군조선의 개창과 더불어 민족적 구심점인 ‘수두’(壇君) 제전을 거행하였고, 이것은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소도라는 이름의 제전(祭典)으로 계승되었다가, 고구려 태조왕·차대왕 때에 와서 '선배' 제도로서 국가적 차원의 정치적 제도로 발전하였다. 여기서 ‘선배’는 선인(仙人) 또는 선인(先人)의 우리말이다. 이때에 이르러 낭가사상은 한국의 주체적인 전통사상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신채호의 견해는 ‘平壤者仙人王儉之宅(평양자선인왕검지택)’이라는 신라 『선사』의 문구에 주목하여 선인왕검이라 함은 삼국시대에 수두교도의 일단을 ‘선배’라 칭하고, 선배를 이두자로 ‘仙人’ 또는 ‘先人’이라 기록한 것이며, 『선사』는 왕검설교(王儉設敎) 이래 역대 선배의 사적을 기록한 것으로, 낭은 곧 신라의 화랑이니, 화랑은 본래 상고 소도제단의 무사, 곧 그때에 ‘선비’라 칭하던 자인데, 고구려에서는 조의선인이라 하고, 신라에서는 미모를 취하여 화랑이라 하였다는, 낭가의 개념과 유래 및 발전과정을 구명함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국선 화랑은 진흥왕이 곧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본받은 것이다. 선배를 ‘신수두’ 단전(壇前)의 경기대회에서 뽑아, 학문에 힘쓰며, 수박(手搏)·사예(射藝)·기마·택견이·깨금질·씨름 등 각종 기예를 하며, 원근 산수에 탐험하며 시가와 음악을 익히며, 공동으로 한 곳에 숙식하며, 평시에는 환난구제와 성곽·도로 등의 수축 등을 자임하고, 난시에는 전장에 나가 죽음을 영광으로 알아 공익을 위하여 일신을 희생하는 것이 ‘선배’와 같다”라고 하여, 낭가의 선출과 그 사상으로서의 사회적 기능을 밝혔다. 낭가사상은 고려 중기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다가 묘청의 난 때 국풍파(國風派)가 유학파(儒學派)에게 패하여 몰락함으로써 소멸하였다는 것이다.
낭가사상은 신채호가 1920년대에 한국고대사 연구를 통해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전통적인 민족사상이다. 당시 민족사학자들은 일제 식민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던 일본 관학자들의 식민사관에 정면으로 맞서, 왜곡되고 날조된 한국사를 재정립하여 국가와 민족의 자강과 독립을 위한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이들 역사 인식의 일반적인 특징인 정신 사관은 신채호의 ‘낭가사상’을 비롯하여 박은식의 ‘혼’, 문일평의 ‘조선심’, 정인보의 ‘얼’, 최남선의 ‘조선정신’ 등으로 전개되었다.
신채호는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여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상태의 기록이다.”라고 역사를 정의하였다.
이러한 역사이론에 의해, 낭가사상과 이에 대한 고대사 인식의 대강인 고대사의 체계화(상고사의 체계화, 부여·고구려 중심의 체계화)와 구강회복론(舊疆恢復論, 상고사의 영역, 한사군의 반도제외설, 고구려의 수·당과의 항쟁 및 나·제의 해외경략설)이 서술될 수 있었다.
‘민족·국가의 흥망성쇠가 그 사상의 추향 여하에 달린 것’으로 보는 신채호의 사안(史眼)은 근대 한국인의 의식 저변으로 침잠되어버린 낭가사상을 웅건한 한국고대사의 구체적인 역사 경험의 구명을 통해 국난의 현실적인 역사현장으로 회상시킴으로써, 비아(非我)인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하자는데 궁극적인 뜻을 두고 있었다. 결국, 낭가사상은 그의 한국고대사의 인식과 서술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권 회복의 실천적 이념으로까지 발전되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낭가사상은 화랑도와 그 사상의 기원에 대한 재해석과 더불어 우리 민족 사상의 근원을 밝혔다는 점과, 그 입론의 궁극적인 목표가 시대정신을 반영한 조국의 씩씩한 자주독립에 있었기 때문에 민족사적 의의까지 함께 가지게 되는 것이다
/ 다음호에는 한국유학이야기 10번째로, '반절(反切)과 이두(吏讀)'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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