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시 읽는 시간”-시집과 독립영화
상태바
[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시 읽는 시간”-시집과 독립영화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5.07 12: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포시민신문] 나에게 시 읽는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습관적으로 시를 생각하고 시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산다. 때론 밤잠을 설치고, 불안해하기도 한다. 시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가. 다 놓아버리고 싶은 날도 있다. 최근에는 시가 무섭다는 생각까지 든다. 시가 무섭다는 말은 꼭 시의 내용이나 창작의 고통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에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내 마음 상태 등. 모든 것들이 포함된 말이다. ‘시 읽는 시간속에 등장하는 오하나의 말처럼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모든 회로가 엉켜서 엉망이 되어버린 상태 같다. 그러나 이제 시를 떠나 살 수도 없다. 때론 절망과 환멸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 다독이고 견디며 산다. 나는 시를 생각하는 시간이 결코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시를 통해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기를 소망한다.

시가 잘 써지지 않거나, 시가 나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때 혼자 목포독립영화관을 찾곤 한다. 처음에는 목포 오거리에 영화관이 있었다. 오거리를 걷다가 맥주 한 캔 사 들고 들어가 영화를 보면서 위로받았던 시간을 기억한다. 지금 영화관은 신안군수협 목포지점 근처, 골목길에 있다. 예전엔 쌀 창고로 사용되었던 공간인데, 독립영화관으로는 적격한 곳이다. 이 거리와 공간은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목포에 사는 나조차도 찾기가 힘들고 매번 골목길에서 길을 잃곤 한다. 아무나 알고 쉽게 찾는 상업영화관과는 좀 다르다. 아는 사람들만 어렵게 찾는 독립영화 같은 곳에 목포독립영화관 시네마라운지MM이 있다.

424일에는 시 읽는 시간영화를 보고 이수정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시는 가장 진실한 언어이자 기도이며, 위로의 노래이기 때문에. 함께 한 사람들 가슴에 새로운 꽃이 필 자리를 마련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나에게도 다시 새로운 길이 생긴 시간이었다. 감독님과 동행한 탁선경 님은 어느 영화관보다도 아름답고, 작고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곳이라고 했다. ‘시 읽는 시간영화가 그런 영화였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찾고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 읽는 시간영화가 개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찾았다. 첫 개봉 날 관객은 3명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서울에 사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파주 출판 도시에서 출판사에 다니며 교정 보는 일을 주로 하는 30대 여성 오하나, 콜텍 기타를 만드는 회사에서 기계처럼 일했지만, 해고자 신세가 된 노동자 임재춘, 겉으로 보이기엔 괜찮은 회사에 20년 동안 다니면서도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공황 장애를 앓고 있는 김수덕,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하고 게임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고 하는 안재형, 혐오와 차별을 모든 약자의 고통과 동일시하며 페미니즘 공부를 하는 일본에서 유학 온 하마무. 다섯 명의 인물들은 아주 덤덤하게 자기 이야기를 시를 낭독하듯 말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고통을 공감하게 된다. 특히 나는 오하나에 공감이 많이 갔다. 출판사에 근무하고 편집 교정을 볼 정도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나, 약을 먹으며 버텨야 하나. 이러다가는 죽겠구나 싶을 때 직장을 그만둔다. 대단한 용기다. 오하나가 하마무를 만나 하마무가 쓴 시를 번역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물론 다른 인물들도 담담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시를 읽으며 서서히 함께 연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스스로 치유해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화려한 영상이나 특별한 장치는 없다. 독거노인이 될 것 같은 미래를 걱정하며 살았던 안재형이 자신을 믿어주는 사랑하는 한 여자를 만나 개미마을에 무허가 집을 마련한다. 직접 고치고 만든 신혼집은 마치 우리 목포 온금동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 같다. 영화 속의 영상은 폐허 속의 공사장이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버려진 땅, 무허가 집, 외롭게 한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시위하는 모습, 가난한 산 동네가 나온다. 그런데 그곳이 이상하게도 모두 목포 어딘가에서 본 듯 익숙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곳에도 눈이 내리고 꽃이 피는 것은 마음이 포근해지고 희망을 암시하는 것 같다.

두 번째 영화를 봤을 때는 시가 더 깊이 마음에 꽂혔다. “오늘 나는 흔들리는 깃털처럼 목적이 없다/오늘 나는 이미 사라진 것들 뒤에 숨어있다/태양이 오전의 다감함을 잃고/오늘 나는 누군가의 애절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오늘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영화 속에서 이 시들이 누구의 시라고 나오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시인이 쓴 시 인지 찾아보는 재미를 빼앗고 싶지 않다. 이건 이수정 감독의 의도이기도 한 것 같다.

한 줄의 시, 한 편의 영화, 한 소절의 노래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 가슴속에 살아 숨 쉰다면 이 세상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으리라. 꼭 예술적인 장르가 아니어도 좋다. 바닥을 친 사람 옆에 힘이 되는 한 사람. 누군가가 있거나,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면 다시 살만하겠다. “모든 것이 돈 때문에 생긴 일이다. 원수인 돈이 생기면 몇 달은 술을 마시고 돈을 던지고 싶다라고 말한 임재춘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를 사 드리고 싶다. 시집 한 권 값이나 독립영화 보는 값이나 국밥 한 그릇 값은 다 만원이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가치 있는 일에 인색하다. 국밥과 시집과 독립영화는 작지만, 절망하고 아파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따뜻한 것들이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없이, 묵묵히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 약

2011문학과의식등단. 시집 가족사진, 목포역 블루스있음.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전남도립도서관, 목포문학관 상주작가 역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