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김경완 시민기자] 소박한 개업 의사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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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광장-김경완 시민기자] 소박한 개업 의사⑦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5.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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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웃 ‘아픔’ 진찰하는 가난한 의사 ‘행복’

1962년 제대 후‘서방사선과 의원’개업 의사의 길에
병원 수입보단 환자 먼저 생각…원칙 지키려 노력해

[목포시민신문/김경완시민기자] 196210년간의 군인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후 목포에 서방사선과의원을 개업했단다. 방사선과 병원으로는 목포 최초였지.

엑스레이를 찍을 때 군대와 사회의 차이가 뭔 줄 아니? 군대는 엑스레이 기계가 가만히 고정되어 있고 사람이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움직인단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사람은 가만히 있고, 기계가 이리 저리 움직이는 차이야.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지만 군대에서 군의관 생활은 참 편했지. 부끄럽지만 이런 생활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의사로 개업한 새로운 환경은 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지.

그래도 얼마 전까지 군대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았지. 제대하기 직전 소령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월급만으로는 살기가 어려웠거든. 오죽했으면 고향 마을 앞산에 있는 나무 200그루를 베어다 판돈으로 생활했겠니. 의사가 된 후로는 아무걱정 없이 연탄 값 정도는 낼 수 있었으니까 마음은 편했어. 그런데 이상하지? 개업을 하면서도 왠지 다른 의사들처럼 큰돈을 벌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왜냐하면 가난한 환자들이 너무 많아 그들의 불쌍한 입장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야.

가령 이비인후과에서 요구하는 엑스레이 사진은 기본이 네 장이야. 앞에서 찍고, 옆에서 찍고, 돌려서 찍는 식이지. 하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한 장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어. 대신 한 장만 찍어도 더 세심하게 판독해 주면 환자도 불안하지 않거든. 과연 내 방식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오히려 열심히 판독하면서 더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어.

환자 입장에서도 병원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다행이잖아. 사실 네 장을 찍으면 가난한 환자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거든. 실제 나를 찾는 환자들의 대부분 인근 섬에서 생활하다가 목포까지 나온 가난한 서민들이 더 많았으니까 말이야.

또 당시에는 싼 엑스레이 필름을 구입해 원가를 절약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실제 엑스레이 자재를 제공해주는 상인들이 반 가격 이하로 싼 필름을 주겠다고 한 적도 있었지. 그런 필름들은 훔쳐온 물건이거나 불법으로 유통된 것들이 대부분이지. 그래서 단 한 번도 싼 필름을 산 적이 없어. 정상 제품이 아닌데 왜 사겠니? 오히려 비용을 절감하려다가 도덕적인 비난을 받는 것이 더 두려웠지.

그러니 남들처럼 큰돈을 벌 수 없었던 거야. 그 대신 나만의 계획을 세워 검소하게 생활했어. 하루는 광주에서 친구가 모처럼 놀러 왔길래 비싼 요리집에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그때 돈으로 3만원 정도 썼을 거야. 그랬더니 한 달 내내 경제적으로 힘들었단다. 그래서 당장 결심했지.

아무리 친한 친구가 와도 비싼 곳에는 가지 않겠어.”

대신 부둣가 근처 선창에서 5백원, 천원짜리 밥을 먹었지. 제법 큰 백반 집에 가도 3천원이면 소주까지 한잔 할 수 있으니 이정도가 내 분수에 맞구나 싶더구나. 내가 돈이 없다고 친구들에게 손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 분수는 내가 알고 지켜야 하지 않겠어?

개업하고 5년 쯤 지나 병원 가까운 곳에 집을 지었는데 그때 은행에서 돈을 빌려 겨우 해결해야 했단다. 그것을 알게 된 의과대학 동창들이 모두들 비웃더구나. ‘개업한 의사가 겨우 그 정도 수준이냐?’는 거지. 당시 개업만 하면 모두 큰돈을 벌 때였거든. 난 그런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소박하게 살았지.

얼마 후에는 옆집에서 화재가 났는데, 바로 옆 내 병원까지 넘어와 모두 타 버린 일이 있었어. 당시 건물이 모두 나무로 지었으니 화재가 나면 순식간에 번져 붙기 마련이거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엑스레이 장비를 서둘러 병원 밖으로 빼 낼 수 있었던 거야. 낮에 불이 났으니까 말이야. 보통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면 걱정만 하고, 아무 일도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이튿날부터 살림집에 엑스레이 장비를 설치하고 환자들을 진찰했단다. 다른 의사들은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지. 열심히 일해야 불행을 잊을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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