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박승희가 꿈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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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박승희가 꿈꾼 세상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5.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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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19915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 받은 정신적인 외상으로 지금도 치유되지 못한 채 30년이 흘렀습니다.

그해 4, 노태우 군사정권이 국민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로 인해 명지대학생인 강경대가 민주화를 위한 거리 시위를 하다가, 폭력적인 진압으로 숨졌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지 두 달째였습니다. 그런데 사흘 후에 박승희가 강경대를 뒤따라갔습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교무실은 절망감으로 몸서리를 쳤습니다. 우리가 가르쳐서 졸업시킨 제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튿날 저와 여교사 세 명이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 앞의 긴 거리에는,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땅바닥에 끝도 없이 앉아있었습니다. 분위기는 비장했고 거리에는 온통 최류탄의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중환자실의 유리창으로,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승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환자실 안에서 승희를 돌보는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승희가 허공에 붕대의 손으로 글씨를 쓰면, 그 내용을 그 친구들이 종이에 글씨를 써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길지 않은 인사 끝에 승희는 나에게 노래를 불러 주라고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나만 무균실에 남아서 승희가 좋아하는 백치 아다다를 불렀습니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 검은 머리 큰 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 꽃가마에 미소 짓는 말 못하는 아다다여/ 차라리 모를 것을 짧은 날의 그 행복 / 가슴에 못 박고서 떠나버린 임 그리워 / 별 아래 울며 새는 검은 눈의 아아아아 아아 아다다여

나는 도저히 끝까지 부르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박승희를 놔두고 하염없이 울면서 목포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더 나았습니다. 승희가 살아있었으므로. 며칠 후 우리는 승희가 목숨을 거둔 전남대학교 병원을 갔습니다. 복도의 양쪽 끝까지 사람들이 나뒹군 채 울고 있었습니다. 온몸을 절망적으로 일그러뜨린 채 짐승처럼 울고 있는 또 다른 제자들도 보았습니다. 참으로 아득하고 또 아득했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비싸게 판, 그의 글에서 죽은 자들을 또 죽였던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이어서 승희의 죽음은 왜곡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당함, 분노, 혼란스러움, 염려스러움, 그리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참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박승희의 죽음에 한이 많습니다.

박승희가 그런 참혹한 계획을 세우기 몇 달 전, 겨울방학 때 목포에 내려왔습니다. 일요일 당직으로 학교에 있는 저를 찾아왔습니다. 짜장면을 같이 먹었습니다.

라면만 먹어도 황송할 터인데 이런 맛있는 짜장면을 먹게 되어 행복해요.”라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 승희에게 내가 해준 말은 겨우, “어른들을 걱정시키는 데모 좀 안할 수 없냐?”라는 말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른들께 걱정스럽지 않도록 할게요.”라며 승희가 밝게 웃었습니다.

그런지 얼마 후였습니다. 그 애가 한 권의 시집을 보내왔습니다. 쑥고개 편지, 좋아한다는 시 제목을 보내왔습니다.아니요, 데모 안 해요 아버지였습니다.

완강한 격전 끝에 밀리다 / 하늘엔 연신 고향집 연기 같은 최루탄 / 저문 하늘 노을에 섞여 / 눈물과 쓰라림으로 덮치고 / 울컥 아버지 생각 /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섰다 / 백동전을 삼킨 전화기는 / 가쁜 숨소리 같은 심호흡을 보내고 / 아버지 저예요, 광주예요 / 몸성히 잘 있어요? 집안엔 별일 없나요? / 아니요, 데모 안 해요 아버지 / 걱정 마세요 / 경고음이 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승희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처럼 주위 사람을 사랑했던 승희가, 죽는 순간까지도 주위 사람을 배려했던 승희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런데다가 혹시나 그 여린 생명이 죽음의 기미를 우리에게 던졌을 수도 있었는데, 우리의 아둔함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자괴감이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다음은 승희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선배 최은희가 쓴 일부 시입니다.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그 손, 그 손으로 / 팔을 들어 네가 써 보이는 마지막 시 / /

나는 이 시를 통해 우리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승희의 높은 뜻을 알았을 뿐입니다. 다만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던 그 애를, 도대체 무슨 말로 대신한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말은 또 아름다운 영혼을 담아내기에는 얼마나 부족한 그릇인가.

그러나 박승희가 없는 이 세상이지만, 박승희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은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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