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카카오톡과 메일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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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카카오톡과 메일에 보낸 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7.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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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핸드폰이나 컴퓨터의 기능을 잘 모른다. 늘 지니고 있는데도 늘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고생시킨다. 그런데 최근에 이군이 핸드폰을 정리해 주었다. 그랬더니 카카오톡에 생일 기능이 생겼는지 제자들이 생일 축하를 보냈다.

그 중에서 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던 2학년 때 우리 반 제자 윤이 문자를 보냈다. 핸드폰을 잃었다며 전화번호를 보내주라는 것이다. 제자 윤은 학급에서 환경부의 부장이었다. 급우들이 좋아했다. 2학년이 끝나면서 쓰고 남은 50 리터 쓰레기 봉투 4장을 되돌렸다. 한 달에 2장을 주는 것을 절약한 것이다.

윤은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와 남동생을 1년 내내 챙겼다. 그러면서도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애였다. 그런 윤이 지금 경기도에서 직업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결혼을 하게 되어 예비신랑과 함께 어머니가 있는 목포에 내려온다. 고맙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우주인 P도 만났으면 한다. 서울로 대학을 간 후에 연락이 끊어졌다. 이 글을 카카오톡에 올리련다. P는 아버지와 오빠와 살았다. 작가가 꿈이다. P가 보낸 메일의 마지막 문장은, ‘빗소리는/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라는 글이다.

P 글을 잘 써 전국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메일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을 이 글에 올린다.

늘 그렇듯 야간 자율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찬 공기에 맞추어 두터워진 상의 옷, 겨울 교복을 입었음에도 가슴이 뛰는 게 느껴지니까요. 변한 건 없는데...

교문을 나서면 늘상 유행가가 흘러나오는 팬시코아를 지나 갑니다. 구수한 냄새 풍기는 붕어빵 장수를 거칩니다. 집 주인인 아저씨의 아침 운동 때에 자주 만나는 홍약방 옆 골목을 들어섭니다. 집으로 가는 길. 어제도, 그제도, 배가 아파 배를 움켜쥐고 집에 갔던 날에도 따라왔던 달도.

저는 늘 가슴이 뛰는 걸 느낍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을 상기해 보면서 가는 길은 무척이나 짧답니다. 팬시코아 주인 아줌마의 바뀐 헤어스타일이 잠깐 보였는가 싶으면, 금세 문 앞에 처가집 양념통닭 광고지가 붙어 있는 통장 아저씨네 집에 와있습니다.

그리고 가로등조차 없는 골목골목의 끝에 있는 집에 도착합니다. 열쇠구멍에 억지로 열쇠를 꾸역꾸역 집어넣고 문을 딸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요, 어찌나 길던지.

선생님, 요즘 문예 창작 시간에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요. 누구보다 씩씩하다고 자부했는데.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요. 곁에서 아빠를 지켜 봐 왔던 터라 무섭고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 때론 정말로 글을 포기하고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다지 잘 쓰는 것 같지도 않고, 책 한 권 사주겠다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막노동일을 나가시는 아버지께 죄송스럽기도 하구요. 아버지의 사랑. 갚을 길이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큰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큰 날이면 오늘은 얼마나 피곤하셨을까 하고 큰방으로가 아버지의 마른 다리를 한참이나 주물러 드리곤 했었어요. 아버지 다리를 잡아보면요. 발목이 한 손에 감기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요. 선생님. 제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려서 이루어낸 결과물들, 다 받아 보셔야 줘요.

선생님, 학교에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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