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이리 와, 안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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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이리 와, 안아 줄게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8.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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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루리 글, 그림/문학동네/202123일 발행)

[목포시민신문] 책방에 와서 책 추천을 부탁하는 사람들의 요구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고 복잡하며 모호할 때가 많다. 때로는 쌀을 한 줌 집어 흩뿌리며 쪽집게 무당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다.

이 책 재미있나요, 라고 묻는 사람이 찾는 재미의 지점이 웃기는 장면인지, 슬픈 서사인지, 짜릿한 연애인지, 무서운 사건인지, 심오한 철학인지, 스스로 모르는 경우에 요즘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놀랍게도 이 책 긴긴밤에는 이 모든 게 다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 눈물 나는 책 좀 추천해 주세요.”

특히 이런 질문이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긴긴밤을 내민다.

이 짧은 동화 한 편이 이토록 풍성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심오한 철학적 태도를 단순하지만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단 한 문장도 빼놓을 수 없이 세상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건만 쉽고 아름답기에 오히려 섬뜩할 지경이다.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감상이다.

어린이들은 과연 어떻게 읽을까. 내가 읽어낸 행간들을 헤아려 읽으려나. 물론이다, 라고 자신한다. 코끼리 무리에서 성장한 코뿔소 노든, 번갈아 알을 품는 연인인 두 아빠 펭귄, 코뿔소의 보살핌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아기 펭귄까지. 내가 아는 어린이들의 감각은 인생에 대해 오만한 태도로 무감각해진 어른들보다 정교하게 감응한다. 그 감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어른들은 이해하고 아이들은 스며든다.

이 책을 친구에게도 선물하고 싶다며 다시 책방에 온 초등학생의 눈빛은 이미 코뿔소 노든을 닮아 있었다. 그 아이는 혹시 자신만의 바다를 찾았을까. 어쩌면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는 단짝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을 지도 모른다.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펭귄의 바다를 찾아가야 돼.”

코뿔소가 되겠다는 펭귄에게 노든이 해 준 것처럼 다정하게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이리 와. 안아 줄게. 오늘 밤 내내 말이야. 오늘 밤은 길거든.”

긴긴밤에 등장하는 코끼리, 코뿔소, 펭귄들은 서로 배우며 연대한다. 그리하여 함께 있을 때는 서로를 보살피면서도 각자의 길을 찾도록 응원하고, 분노와 복수심을 다스려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하게 되는 법을 안다. 그걸 아는 자들만이 비로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동네산책 책방지기/윤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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