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칼럼-목포여성인권지원센터 부소장 박현경]너 페미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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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목포여성인권지원센터 부소장 박현경]너 페미하니?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8.2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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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성인권지원센터 부소장 박현경

[목포시민신문] 2000초반부터 인터넷 일부 싸이트에서 전라도를 혐오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던 전라디언, 홍어, 슨상님 등은 급속하게 인터넷 용어로 확산되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잠잠해졌지만 전라도 사람과는 동업하지 마라 뒤통수 친다 등의 발언이 인터넷 댓글과 대형 싸이트에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왜곡되게 인식되면서 전라도에 대한 편견이 조장되고 전라도 사람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역 감정이라고 만 뭉뚱그려 치부 할 수 없는 것은 지역적 격차와 차별이 실제로 오랫동안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 누가, 무엇을 위해 전라도를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려 노력하였는가? 어쩌면 이것은 전라도가, 전라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등이 두려워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억압하려 한 반격은 아닐까? 지금 돌이켜 보며 그런 생각이 든다.

전라도에 대한 혐오가 조금 수그러졌다며 그 후 장애인에 대한 혐오,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혐오로, 혐오의 손가락질은 방향을 바꿔가며 확산되고 있다. 단식 투쟁을 하는 유가족 앞에 찾아가 폭식 투쟁을 한다거나, 퀴어 퍼레이드를 몸으로 막고, 사제 폭탄을 행사장에 투척 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으로 혐오를 조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연구 논문과 수치 보고서 형식 등의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혐오인지 분간하지 못 할 정도로 침투하기도 한다.

현재 혐오의 손가락 방향이 가장 극단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여성이다. 아니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일부 여성이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일부 나쁜 여성 말이다. 그래서 그 여성들은 나쁘고 위험하기에 우리 사회에서 박멸되어야 하며, 그래서 그 여성들을 식별하는 아주 간단한 간별 법이 있다. 머리를 숏컷으로 자른다거나, 화장을 하지 않고, 여초라고 부르는 여성들이 주로 모여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 말은 듣고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는 과거 수많은 전라도 사람이 경험했던 출신 지역이 어디인가? 라는 질문, 입사 서류 전형에 주민등록번호의 특정 번호가 어느 지역을 나타낸다더라, 특정지역의 사투리가 가지는 사회적·권력적 위치성 등으로 차별 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과거가 떠오르지 않는가?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있다. 최근 이런 페미니스트 간별법 레이다 망에 걸린 양국 선수가 있다. 하필 광주 출신에 숏컷을 하고, 심지어 여대를 다니며, 여성혐오 싸이트에서 페미 단어라고 명명한 특정 단어를 사용했다면 요즘 말로 빼박이다. 페미니즘이 역차별과 남성 혐오를 주장한다고 왜곡하고, 그런 페미니스트는 욕하고 괴롭혀도 된다는 인식이 안산 선수의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안산 선수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그 선수의 금메달과는 더더욱 상관이 없다. 과거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의 삶에서 현재 우리가 한 발짝 앞서 있다는 것이 여성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삶에서 비약적으로 진일보 했다고 볼 수 없다. 여성의 교육 기회가 늘어나고 사회진출이 확장되어, 시험에 의한 경쟁에서 여성들이 우위를 차지한 것만으로 여성의 권익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아닌 척 하지만 여성을 가사와 돌봄의 영역에서 머무르지 않게 하고 진학을 하게 해 주고 취업 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넒은 아량을 베풀고 있음에도 고마움을 모르는 존재로 보고 있는 무의식이 작동하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존재로 왜곡하여 혐오하고 있다.

이러한 작동은 기존의 가부장제에서의 여성 억압과는 달리 이미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고 활동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판단하여 여성의 독립에 적개심을 가지기 때문에 일어난다. 여성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영역을 형성하고 주류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며 반격(백래시)이다. 백래시는 안산 선수의 금메달을 반납하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기도 해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작동한다. 문재인 정부 초반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젠더 정책 때문이라는 청와대 정책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최근 국민의당 당대표는 20대 남성의 지지율을 잡기위해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발언을 일삼고 있다. 이는 청년 정책의 부재와 경쟁에만 내몰리는 격화 된 취업 시장, 열악한 노동 환경, 급격하게 발생 한 빈부차에 대한 고려과 정책에 대한 책임감 없는 떠넘기기이다. 옛말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 시스템을 돌아보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멀고 어렵지만 책임을 전가하며 욕하고 혐오하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한 대선 후보자의 나쁜 페미니스트 발언과 최근 조선일보에서 나쁜 페미는 급진적 페미로 작성하라는 가이드 등 언론에서 페니미즘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심어주고 있다. 한국사회의 정치권과 언론이 자신들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혐오하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의 주장을 여과 없이 수용하고, 이용하고 있다. 젠더 정책을 여성 우위 정책으로 왜곡하고, 젠더 갈등으로 격화시키고 있다.

여성의 사회, 문화, 경제 등 영역에서의 활동과 성장은 페미인가 아닌가의 이분법적 잣대로만 들이대고 여성들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을 위협하고 있다.

혐오는 오래 갈 수 없다. 당장은 옮고 중요한 이슈인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차별 혐오는 언젠가 폭력이라는 민낯을 드러낸다. 우리는 지역, 학력, 성별, 성적지향, 직업, 나이, 장애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민주 시민으로서 자신의 영역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누가 두려워 하는가?

질문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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