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서른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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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서른의 여름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8.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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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0 금요일 희망차게 영화롭게

[목포시민신문] 모든 계절이 차츰 식어갈 것 같았던 어느 날은, 생각보다 한순간에 꺼져버렸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면서도 항상 무언가에 도전하기 위해 발버둥 쳐왔다. 누군가 내 일상에 침범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렸던 날들, 다만 상처받지 않기 위함은 아니었다. 모든 걸 계획 속에서 완벽하게 살아내야만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모든 치열한 시간은 점차 과열되어만 갔다. 그러나 그 열기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열기가 식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왔다.

서른의 여름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다.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뉴스와 다큐멘터리에서는 자연 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오히려 더욱더 더워졌으면 더워졌지, 누그러지지 않는 날씨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여름은 그 어느 날보다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모든 타이밍이 딱 맞게 떨어졌다. 어쩌면 중국 우한에서 발발한 전염병의 창궐이, 이 모든 무기력함의 시발점일지도 모른다. 삐걱거리던 인생도 나름 순탄하게 잘 굴러갔으니 말이다.

그래도 경제가 죽어가는 이런 어두운 시기라도, 피부로 와닿은 차가운 시련에서 희망을 찾아다녔다. 전문가들을 비롯해 전 세계인들은 이 전염병이 이렇게나 길게, 그것도 몇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조금만 참으면이라는 말이, 그래도 꽤 긍정적으로 먹혔던 시기가 있었다. ‘조금만 참으면’,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버티면’. 조금만이라는 단어가 스며드는 진한 유혹은 다른 의미로 참 잔혹했다. 만약 이 순간들을 조금만 참아도, 기다려도, 버텨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만이 쥐여준 얕은 희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스러졌다.

자연의 계절은 점점 더 뜨거워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차갑게 식어갔다. 자연의 생태와 인간의 생태가 점점 더 정반대로 되어갔다. 이 세상에 뜨거운 열정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몇몇 사람들은 AI나 기계가 사람들을 대체해도, 또 다른 새로운 직업이 나타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이토록 급변하는 시기에서, 직업을 잃은 사람이 또 다른 새로운 직업을 캐치해낼 수 있을까. 전염병이 만연한 이 순간에, 직장에 출근도 하지 못하고 방에 틀어박힌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과연 따뜻한 봄이 올 거라고 확답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우리는 조금만이라는 마법 같은 희망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말이다.

언젠가 나는 나의 서른에 대해 그 어느 날보다 뜨거울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열심히 산 만큼 보상받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나의 서른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여전히 여유가 없었고, 여전히 고민이 많았다. 이제 나의 인생에 뜨거웠던 시절은 저버리고 만 것일까. 한편으론 서글프면서도, 또 한편으론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이런 게 삶이라면, 나는 더는 변화하려 발버둥 치지 않으련다. 앞으로도 내 인생의 여름은 차츰 식어가겠지만, 그렇게 농익어가는 가을이 될지도 모른다.

급변하는 세상과 정반대로 가는 자연의 생태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놓았던 문학을 다시 잡고, 시를 읽고,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렸던 감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점점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서 가슴에 뜨거운 감성만큼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걸 포기하고 순응해가는 운명이라도, 촛불 같은 희망이 가슴 속에 남아있길 바란다.

나의, 당신의, 우리의 이 눈물 짓는 순간들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지쳐가는 여름 속에 마음만큼은 메마르지 않기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는 인생의 계절을 맞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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