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의 희망편지]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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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희망편지] 빈집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9.1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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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가구가 빠진 빈 집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기분이란, 가슴 속에 묻어뒀던 추억을 꺼내놓는 것 같다. 그동안 숱하게 이사를 해왔지만, 부분적으로 짐을 뺐던 적은 없었다. 거의 옆집이나 다름없는 원룸으로 이사했던 이유는 단순한 기분전환 때문은 아니었다. 월세가 10만원도 안하는 작은 고시텔에서 월세 20만원, 25만원 짜리로 차례차례 옮겨갔다. 이사한다고 해서 형편이 더 나아지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건만, 나는 왜 그토록 공간에 집착했던 것일까? 이십대 초반, 아주 어린 나이의 나는 그 나이대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자취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게 넓고 썩 좋은 공간은 아니더라도, 되도록 깔끔하고 구색이 잘 갖춰진 방을 찾고만 싶었다. 치안이 더 좋은 곳을 찾겠다는, 아주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그렇게 몇 차례를 거쳐 왔던 나의 자취방은 어느새 월세 40만원에 달하는 원룸에 도착했다. 고시텔을 전전했던 가난한 이십대 초반의 청춘은 쥐꼬리만 한 월급을 조금 씩 조금 씩 모아 보증금을 늘려갔다. 일을 쉬지 않고 한 덕에 경력도 탄탄해졌고, 덕분에 이전에 있던 지역보다 조금 더 도심으로 올라올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온 이곳 원룸은 꽤 깔끔한 신축에 주변 환경도 괜찮았다. 술집 근처로 시끌벅적했던 이전 원룸들과는 차원이 다른 조용함이 있었다. 간혹 초등학생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창문 너머에서 들렸지만, 그것이 일상생활을 크게 침해하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나는 아주 신나게 그동안 바라왔던 자취 라이프를 즐겼다.

그러나 참, ‘그동안 바라왔던 자취 라이프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거창하고 서글플 정도로, 꿈에 그려왔던 자취 라이프는 아주 소소한 것이었다. 이미 이때는 이십대 후반에 접어 들어서,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시끌벅적하게 술판이나 파티를 벌일 수도 없었다. 기껏해야 주변 치안이 좋고 신축이라 깔끔하다는 장점만 있을 뿐, 예쁜 가구를 들일 수 있을 만큼 평수가 넓은 원룸도 아니었다. 나는 나름대로 나만의 취미들을 즐겼다. 주말이면 집에서 소소하게 퍼즐 맞추기를 한다든지, DIY 장식품을 만든다든지, 작은 화분에 허브나 상추 한포기 정도를 키운다던지.

어찌 보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아주 작은 변화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공간에서 아주 풋풋하고 향기로운 자유를 느꼈다.

혹시 모르잖아. 내가 언론고시에 합격하면, 서울에 방을 얻고 살지도 모르고. 이것저것 살림만 늘려봤자 이사할 때 버겁기만 할 테지. 그때까지 조금만 참자.”

참자, 견디자, 기다리자. 나 자신에게 지키지도 못할 달콤한 약속들을 내뱉으면서, 그동안 나는 꾸역꾸역 자유를 억눌러왔다. ‘만약에 합격 하면이라는 말은, 20대 절반을 창고 같은 원룸에서 살게 만들었다. 혹시 서울로 이사 가게 될지도 몰라 풀지 않았던 짐은 원룸 구석에 그대로 처박혀 있었다. 친구도 초대하지 않았기에, 부엌에는 국그릇과 밥그릇, 양은냄비가 전부였다. ‘만약에’, ‘언젠가가 만들어낸 비참한 기다림에, 꿈에 그리던 나의 자취라이프는 아주 소박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서울로 이사 가면 말야. 그땐 퇴근하고 나면 취미생활도 할거야.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하니까 캔버스에 그림도 그리고, 저녁마다 친구들도 초대해서 요리도 해주고 말야. 화분도 키울 거야. 루꼴라 허브를 키워서, 직접 만든 또띠아 피자 위에 올려 먹을 거야.”

이루지 못한 꿈을 내려놓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자취 라이프를 보낸 지 어느 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나의 20대 후반은 흘렀고, 어느덧 서른이 되었다. 20대 중반까지 꿈속에서 방황하다, 이제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되었는데, 나는 막상 뭘 해야할 지 몰랐다. 오랫동안 꿈에 절어 있었던 만큼, 절망하고 방황하는 시기도 겪었다. 서른이 되고, 3년간 정들었던 이 방도 정리하려고 하니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애잔해졌다.

DIY로 만든 책장과 책상, 처음으로 사본 매트리스와 침대프레임, 요리 한 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산 후라이팬과 집기들. 박스로 가득 차 있던 20대 초반의 원룸과는 차원이 다른, 그득그득 찼던 방에서 가구를 들어내자 나는 내 추억의 전부를 들어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한편으로 공허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개운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해 볼만큼 해봤고, 이제 더는 후회는 없다고.

내가 살면서 또 이런 기분을 언제 느낄 수 있을까?

창 밖에는 여전히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은 여전한데, 나만 변하는 것만 같다. 이런 변화가 이 빈 집에서 느껴지는 마음처럼, 앞으로도 후회 없고 당차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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