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지난여름, 연꽃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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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김경애 시인] 지난여름, 연꽃 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1.09.1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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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여름 아침이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많다. 특히 비가 올 것 같은 날은 더 그런 마음이 든다. 올해는 멀리 가지 못했다. 문득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무안 연꽃 회산 백련지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가족들과 가기도 하고, 마음이 답답할 때 혼자 자주 가기도 했었다. 또 새벽에 싱그럽게 피어있는 연꽃을 보고 싶을 때 사진을 찍으러 가끔 갔던 곳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입장료를 내야하고 울타리가 생기면서 조금 뜸했다.

요즘 도서관 출근하기 전, 아침 일찍 주변 산책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우연히 그곳을 찾았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무료입장이었다. 몇 년 동안 규모는 더 커져 있었다. 이곳은 연꽃이 필 때만 가는 곳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무 때나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은 횡재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출근 전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너무 오랜만에 가서인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은 낯설지 않아 반갑고, 달라진 곳은 새로워서 좋았다.

올여름엔 세 번 연꽃을 보러 갔다. 우연하게도 세 번 모두 비가 왔다. 장대비가 쏟아질 정도는 아니고 걷다가 비가 오면 우산을 펼 정도였다. 그러니까 비가 와서 연꽃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비가 올 것 같아 연꽃을 보러 간 셈이다. 햇볕이 쨍쨍한 날보다 훨씬 기분이 좋고 편안해진다. 우산과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걷는 시간은 명상하는 시간 같다.

법정 스님은 회산 백련지를 다녀온 후 쓴 수필에서 마치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듯한 두근거림과 감회를 느꼈다고 한다. ‘108 출렁다리를 건널 때는 108가지 번뇌들은 다 무엇인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른 아침에 아름다운 연꽃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사 복잡한 것들을 잠시 잊을 수 있다. 나도 연꽃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평소에는 감히 상상치 못한 엉뚱한 생각도 해 보는 것이다.

두 번째 갈 때는 개구리들만 더 자세히 보았다. 비가 오면 개구리들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곳곳에 개구리 조형물들이 있는데, 다양한 모습의 개구리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앙증맞고 귀엽게 만들어져서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 같다. 친구들과 익살스러운 개구리들, 다정한 연인 같은 개구리, 야구 경기를 하는 개구리, 벌서고 있는 개구리, 친구랑 싸운 것 같은 개구리, 혼자서 애정을 구하는 개구리, 사랑을 고백하는 개구리 등. 다정다감한 개구리들이 마치 오랜 친구를 본 것처럼 웃음 짓게 한다. 다른 조형물들도 어색하지 않고 연꽃들과 잘 어울린다. 여러 편의 동화를 상상하게 만든다. 주제별로 만들어진 꽃길도 좋고, 작은 동물원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환해진다.

무안 회산 백련지는 10만 평 규모의 동양 최대 백련지라고 한다. 처음에는 정수동 씨라는 사람이 연꽃 12그루를 심었는데, 그날 꿈에서 학 12마리가 내려앉은 걸 본 후 상서로는 징조라고 생각하고 연꽃을 가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백련뿐만이 아니라 가시연꽃, 수련, 홍련, 애기수련, 노랑어리연꽃 등 자연학습장과 수생식물생태관도 잘 조성되어 있다. ‘, 무안 정말 좋구나.’ 내 고향 무안 이야기에 처음으로 더 많은 애착을 갖게 되었다. 이제까지 무안에 관해 쓴 시는 몇 편 있어도 다른 글은 쓰지 못했다. 연꽃을 보러 다니면서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어떤 내용으로 쓸 것인가? 이것은 아직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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