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木蓮), 낮은 데로 임하시는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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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木蓮), 낮은 데로 임하시는가! (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4.05.0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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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도덕운동협회 무안지부장 조애령 박사

[목포시민신문=]인조의 외조부였던 구사맹(具思孟, 1531∼1604)의 팔곡집(八谷集)에 실려 있는 ‘북향화(北向花)’라는 시(詩)의 서문에 “해남 동헌 마당가에 한 꽃나무가 있는데 겹꽃의 자색 꽃잎은 협소하고 길었고, 향기는 무척 강렬하였다.”라는 자목련에 대한 묘사가 있다. 이는 목련의 특징 중 하나인 향기를 표현한 것으로 목련의 강한 향(香)은 문화권에 따라 생활 풍속에도 다양하게 영향을 주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에는 목련의 강한 향기를 놓고 목련이 있는 침실에서 잠이 들면 죽음에 이른다고 하고, 북미가 원산지인 태산목에 꽃이 필 때면 나무 그늘 아래서는 잠도 자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 북해도 지방에서는 목련의 향기가 병을 불러온다고 해서 방귀 뀌는 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인도에서는 목련에 죽은 아이의 혼백이 들어 있다 하여 불길한 나무로 꺼려했다고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장마철에 집안에서 묵은 목련 나뭇가지를 태워 방향, 방습효과로 사용하였다. 또한 목련 향기가 병마(病魔)를 쫓아낸다 하여 집집마다 장마 전에 땔감용 나무로 준비해 두어 집안 밖의 안 좋은 기운과 냄새를 제거하는데 쓰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농업을 중시한 선조들은 목련을 농사의 지표목으로 삼기도 했다. 지방에 따라 목련이 피면 못자리를 시작한다거나 꽃이 지면 파종을 한다거나 꽃이 아래로 향하면 비가 오고, 위로 향하면 날씨가 맑고, 꽃이 오래도록 피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는 오늘날의 기상예보를 목련을 보면서 관측했다고 한다.

조선 세조 때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이 지은 원예 관련된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에서는 “목련은 꽃이 아름다워 7등에 속한다”고 하였다. 정조 때 유금(柳琴, 1741∼1788))이 편찬한 사가시집(四家詩集)에 “이른 봄 목련꽃이 활짝 피는데/ 꽃봉오리 모습은 흡사 붓과 꼭 같구나./ 먹을 적시려 해도 끝내 할 수가 없고/ 글씨를 쓰기에도 적합하지 않네.”라는 ‘목필화(木筆花)’에 관한 시(詩)가 실려 있다. 꽃봉오리를 붓에 비유할 정도로 목련은 잎과 꽃이 함께 피지 않고 정갈하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하여 고고한 선비나 문관, 군자(君子)를 상징하기도 했다.

민화에서 모란은 부귀영화를 뜻하고, 목련은 붓 모양의 꽃이라 하여 조선시대 최고 학문연구기관인 홍문관을 상징하는 옥당(玉堂)을 뜻하며, 해당화의 당(堂)은 집을 뜻하여 모란, 목련, 해당화를 함께 그려 놓으면 부귀옥당(富貴玉堂)이라는 메시지로 해석하였다.
이는 곧 재물도 갖추고, 학문적으로도 성공하고, 가문은 부귀 영화스럽고, 집안에 효자가 나타나기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다른 꽃들과 더불어 목련이 함께 그려진 민화를 선비들은 선호했다고 한다. 또한 목련꽃과 바위를 함께 그린 민화는 반드시 장수하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정작 이 꽃들이 피고 지는 기간은 짧기 그지없는데 은근히 민화를 통해 높은 벼슬과 함께 부귀공명, 장수까지 누리고 싶다는 탐욕이 그림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싶어 꽃이 지는 것이 허무한 게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는 “목련 첫 꽃은 어느덧 지고 있는데/ 우리도 더불어 젊지는 않구나(辛夷始花亦已落, 況我與爾非壯年).”라고 하면서 꽃도 젊음도 영화도 덧없음을 표현하였다.

대부분 꽃과 관련하여 전설이 전해지고 있듯이 목련에도 얽힌 슬픈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옛날 옥황상제에게 어여쁜 공주가 있었다. 공주의 얼굴은 백옥처럼 희고 마음씨도 비단결처럼 아름다웠다. 수많은 젊은 청년들은 공주를 사모했으나 공주는 오로지 북쪽 바다의 무섭고 사나운 신(神)만을 사모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는 몰래 왕궁을 빠져나와 먼 북쪽 바다의 신을 찾아갔다. 그런데 신에게는 아내가 있었다. 공주는 이룰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닫고 검푸른 바닷물 속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고 말았다. 북쪽 바다의 신은 공주를 가엾이 여겨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신은 자신이 혼인했다는 이유로 공주가 죽었다는 것을 자책하며 아무 죄도 없는 아내에게 극약을 먹여 죽게 한 뒤 공주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 주었다.
공주의 무덤에서는 생전의 모습과 닮은 백목련이 피어났고, 독약을 먹은 신의 아내 무덤에서는 자목련이 피어났다고 한다. 북쪽 바다의 신을 사랑했던 두 여인의 무덤가에 핀 목련은 죽어서도 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북쪽을 향해 꽃봉오리가 맺히고, 공주의 넋으로 피어났다 하여 ‘공주의 꽃’이라고도 불렀다. 목련을 북향화(北向花)라고 부르는 이유가 전설에 얽힌 사연이 있어서일까? 이렇듯 꽃말도 이루지 못할 사랑, 숭고함, 고귀함, 은혜, 우애, 존경 등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올 봄은 예년에 비해 기온이 높아 많은 꽃들이 꽃망울을 일찌감치 터트렸다. 사람들은 늘상 하는 말로 “할 일이 많아 바빠 죽겠다”고 하소연 하는데 꽃들이라고 맘이 안 바쁘겠는가? 잔 서리 가시지 않은 날 목련꽃이 꽃망울 맺혔는가 싶어 다가서니 밤사이 몸부림치는 태동도 표내지 않고 활짝 피어 어느새 꽃잎이 지고 있다. 하얀 꽃 낱장마다 올해도 미처 만나지 못할 푸른 새싹이 그리워 나무 밑동 언저리에 소복이 내려앉아 새 생명 탄생을 위해 기꺼이 낮은 데로 임하는 기다림의 몸짓인가?

요즘 때가 때인지라 누구를 위한건지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목련이 피고 지는 자리에서 신성수 시인의 ‘木蓮, 낮은 곳으로 오다’라는 시(詩)를 읆어주고 싶다. “(중략) 純白의 향연 금세/ 낮은 곳으로 자리하고 마는데/ 떨어진 자리마다 네 더운 숨결이 살아/ 땅은 더 씩씩한 생명을 탄생하는/ 놀라운 신비여,/ 거기 무릎 꿇지 못하면/ 나 일어서지 못하리라./ 그 자리에 손 모아 기도하지 못하면/ 나 용서받지 못하리라./ 木蓮이여/ 기꺼운 낮아짐이여 /나를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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