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베스트 북, 한국정치의 문제점과 개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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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베스트 북, 한국정치의 문제점과 개혁방향
  • 승인 2015.02.1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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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는 최근의 헌법 개정 및 선거제도 개편 논의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정치권과 학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비단 시의성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의 저작들과는 달리 저자는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정당체제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인 틀 속에서 정연하고 명쾌한 논리로 풀어나간다.

저자가 ‘87년 체제’로 상징되는 현 한국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특정 정치집단으로 권력이 집중되어 그로 인해 정치적 다양성을 표출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양대 정당에 의한 정치권력의 독과점이 지속되는 구조하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은 봉쇄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치권력의 독점은 다름 아닌 다수대표제와 양당제, 제왕적 대통령제로 구성되는 다수제 민주주의의 전형적인 정치제도들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특히 비례성이 현저히 낮은 현행 선거제도는 양대 정당의 고착화를 초래했고,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합의에 기초한 포괄정치의 작동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2000년 이후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지국가 건설과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87년 체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하는 ‘포괄의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포괄의 정치가 작동하는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비례성 제고’, ‘다당제 보장’, ‘연정형 권력구조의 정착’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선거제도는 다당제와 분권적 정치체제를 촉발하는 개혁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현행 다수제의 대안모델로 제안하고 있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선거제도 디자인의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학계에서 이상적인 선거제도로 인식되는 것은 맞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혼합식인 독일식 비례대표제만큼 높은 비례성을 보이는 선거제도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제의 성격이 강하면서도 인물대표성을 구현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결정적인 단점은 의석수의 유동성에 있다. 초과의석(overhang seats)과 보정의석(compensation seats)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총의석이 과다하게 늘어나며, 늘어나는 의석규모도 선거 때마다 유동적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현실에서 채택 가능한 세계 최고의 선거제도”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독일식 선거제도가 이상적인 선거제도일 수는 있어도 보편적 수용력을 갖는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의석확대에 민감한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저자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성공사례로 뉴질랜드를 지목한다. 뉴질랜드는 양당제 국가였지만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다당제와 연정구성이 용이한 정치체제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독일처럼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아닌 우리와 같은 전국명부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국명부방식은 비례성은 높아도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아니기 때문에 지역구도 완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전국명부방식의 비례대표제이기 때문에 의원정수의 증가가 독일과 같이 심하지는 않아도 이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뉴질랜드가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원형 그대로 도입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우리 실정에 맞고 우리가 얻
고자 하는 제도적 효과를 보일 수 있는 ‘한국형’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독일식 비례대표제 구상이 좀 더 세밀하게 디자인될 필요가 있다하더라도, 저자가 말하는 정치개혁의 방향과 내용은 한국정치의 바람직한 청사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같이 높은 비례성을 보이는 선거제도를 통해 다양한 정치세력의 원내진입을 보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의제 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특히 ‘선(先)선거제도 개혁, 후(後)권력구조 개편’은 최근 정치권의 무성한 논의들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하는지 잘 보여준다.

<김종갑 베를린자유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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