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배 기자의 중국을 제대로 알자<5>
상태바
정거배 기자의 중국을 제대로 알자<5>
  • 정거배 기자
  • 승인 2015.02.17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이징 여행을 하면 찾게 되는 이화원. 청 왕조가 한창 번성할 때인 1750년 건륭제 때 조성한 휴양지이자 궁궐이었다. 그러나 2차 아편 전쟁 때인 1860년 영국과 프랑스연합군이 약탈해 수난을 당한데 이어 1900년 의화단의 운동 때도 8개국 서구 열강의 군대에 의해 침탈당하는 등 중국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청나라가 기울어 갈 때 국가권력을 거머쥔 서태후는 이곳을 여름 피서지로 사용했고 재건공사에는 청나라 해군 예산을 유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정세 어두운 청나라 조정, 망국의 길에 서다
‘서양을 배워 서양을 물리치자’ 자강운동도 무위로      
 
   

정거배 <인터넷전남뉴스
기자, www.ohmyjnews.com>

일본과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제국주의의 각축장이 된 1800년대 중반 중국은 밀고 들어오는 외세와 청조 봉건압제에 저항한 민중들의 저항도 있었다. 바로 태평천국운동으로, 아편전쟁 후 혼란한 시대에 홍슈취안(洪秀全)이 주도한 반봉건 반외세 대규모 농민운동인데, 평등한 지상천국을 건설한다는 이 운동은 1851년부터 무려 15년 동안 지속됐다.  

우리로 말하면 1894년 전봉준의 갑오농민전쟁과 성격 면에서 비슷한 민중들의 대규모 저항운동이었다. 태평천국운동의 지도자 홍슈취안은 1853년 3월 난징(南京)에 입성해 수도 이름을 천경(天京)이라고 정하고 신국가 건설에 착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1864년 영국 등 열강 제국주의의 군사원조를 받은 청나라 조정의 정식군대가 아닌 반혁명의용군에 의해 진압되면서 끝이 났다. 그러나 태평천국운동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 농민저항운동이었으며, ‘서양을 배워 서양을 물리치자’는 양무운동으로 이어졌고 그 뒤 쑨원(孫文)이 주도하는 신해혁명(1911)에도 영향을 미친 근대 중국에 있어서 농민혁명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특히 중국민중들의 이같은 반외세 반봉건 투쟁은 중국 대륙을 완전 식민지로 만들려는 서구 제국주의를 저지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동 이유로 철도운행도 중단
제국주의 열강들의 중국 대륙에 대한 지배와 침탈 속에서 양무운동에 이은 1898년 무술변법운동이라는 자강운동이 있었다. 청일전쟁에 패한 중국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단순히 서양의 과학기술의 도입 등이 중심이었던 양무운동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1891년 양무운동 당시 건설된 중국 최초의 허베이성 탕쓔철도가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 조정은 기차가 운행할 때 진동으로 선왕들의 영혼을 흔든다며 철도운행을 금지시킬 정도로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은 이미 1872년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기술에 의해 철도를 건설하고 일본 천왕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치렀고 7년 후에는 독자적인 기술로 철로를 건설했다.  
이미 서구와 일본은 증기기관차에 이어 전기사용에 대비한 2차 산업혁명기에 진입하고 있는데도 ‘우물 안 개구리’ 청나라 조정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당시 청나라는 과거시험을 치를 때 기마술이나 궁술 등 과목이 무과시험 과목이었을 정도로 세계변화에 어두웠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학문을 바탕으로 서양의 학문을 이용하자’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이 핵심인 양무운동은 한계를 드러낸 채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양무운동은 전통적인 농업국가인 중국에 대한 근대화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영국까지 유학을 다녀왔던 옌푸(嚴福 1854-1921)는 “중국이 변하지 않으면 멸망 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지식층, 망국의 위기감 확산
그러자 단순히 무기기술의 서양 배우기 차원을 넘어 입헌군주제 등 서구의 정치제도 도입, 즉 제도상 개혁을 주장해 온 변법론이 힘을 얻게 된다. 청일전쟁의 패배와 서구 제국주의의 중국 분할로 망국의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을 때였다.  변법을 주장하는 하급관리 캉유웨이의 개혁 주장이 청나라 11대 황제 광서제에게까지 알려지게 된다.  광서제가 주도해 1898년 소위 ‘무술변법’이란 개혁을 시도했다. 1898년 8월 8일 광서제를 조서를 내려 ‘정치적으로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 경제적으로 상공업 발전을 추진한다’는 조서를 내려 무술변법이 시작됐지만, 결국 함풍제의 후궁이었던 서태후 등 수구세력에 의해 제압당했다.
 
헌법 제정, 국회 개설, 과거제 개혁과 서양식 학교 설립, 산업의 보호육성 등을 구체적 목표로 정했으며 주요 도시에 학교를 설립하고 신문을 발행해 계몽활동을 폈다. 그러나 옛 관습에 젖어있었던 청나라 조정 관리들과 서태후 등 수구파에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여긴 것이다. 당시 수구파는 변법파가 영국, 일본과 연합하는 외교 방침을 세우고 이토 히로부미가 청나라를 방문해 광서제를 만나자 서태후 측과 수구파는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인 광서제를 연금하고 서태후가 실권을 장악해 버렸다.

변법운동과 서태후의 쿠데타
변법자강운동이 좌절되자 이 운동을 주도했던 캉유웨이와 량치차오는 망명 길에 올랐다. 실패했지만 무술변법운동은 수천 년 간 봉건사상이 뼈 속 깊이 박혀있던 중국인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베이징 이화원과 함께 연상되는 서태후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자. 서태후는 청나라 9대 황제 함풍제(재위기간 1850-1861)의 세 번째 황후로, 함풍제에 이어 불과 5살 때 황제에 오른 동치제의 생모이다. 어린 아들이 황제 자리에 오르자 서태후는 공친왕과 공모해 쿠데타를 통해 조정 내 반대파를 제거하고 국정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동치제가 1875년 20세 나이에 죽자 자신의 누이동생의 아들 광서제를 황제자리에 올려 자신의 권력을 이어갔다. 황제에 오를 때 광서제의 나이는 3살에 불과했는데, 그러자 광서제의 이모인 서태후가 국정실권을 장악한 것이다. 

무술변법운동을 추진 할 때는 광서제 나이 16세였다. 광서제는 그동안 사사건건 간섭하며 권력을 쥐락펴락 해온 이모 서태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캉유웨이 등 변법파를 만나 새로운 길을 시도했지만 결국 100일 만에 서태후가 주도한 쿠데타 세력에 의해 유폐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어 1899년부터 2년에 걸쳐 계속된 외세배척 운동인 의화단 운동으로 청나라는 더욱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청조를 받들고 외국을 멸망시킨다‘는 기치를 내건 의화단 운동은 쓰촨성까지 확산되는 등 중국 대륙을 뒤흔들었다. 베이징까지 진입한 의화단은 외국 공관을 공격하자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8개국 군대가 베이징에 동시에 밀고 들어왔다.

군사비를 전용해 이화원 재건
이 때 서태후는 시안(西安)으로 피신했고 베이징을 점령한 8개국 군대는 각 나라별로 구역을 나눠 상주하면서 청나라는 수도 베이징에 8개국 국기가 휘날리는 굴욕을 당했다. 당시 베이징 시민들은 집집마다 자기 동네를 점령한 나라의 국기를 게양해야 하는 치욕을 맛보았다. 여기에 청나라는 1901년 열강 11개국과 맺은 신축조약을 통해 전쟁배상금 4억5천만냥의 은을 지불하게 되는 등 나라 재정은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진보적 개혁에 반대해 왔던 서태후는 피신했던 시안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온 뒤 헌법개정, 상공업 진흥 등 개혁을 실시하려 했지만 굴욕외교로 전락하면서 기울어 가는 반식민지 청나라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했다.  

서태후의 여름 피서지로 사용되기도 했던 이화원은 원래 1750년 건륭제 때 조성한 것으로, 호수인 쿤밍호는 원래 작은 연못이었던 것을 확장해 항저우의 서호를 모방해 만들었다고 한다. 서태후는 영·프 연합군과 의화단 운동 등으로 파괴된 이화원을 재건하기 위해 해군 예산 30만 은을 유용해 공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태후는 시안에서 베이징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 감금 상태에 있었던 광서제가 1908년 11월 14일 죽자 광서제의 이복동생인 부의를 황제로 정했다. 그가 바로 청나라의 마지막이자 12대 황제 선통제(宣統帝)이다. 그리고 서태후는 ‘다시는 자신처럼 여인이 정사에 관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광서제가 사망한 다음날인 11월 15일 세상을 떠 풍미했던 한 시대를 마감했다.<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