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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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 류용철
  • 승인 2015.03.1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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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살다보면 어렵고 또는 기쁜 일에 직면하게 된다. 아버지로써 가져야할 부담감 등이 갑작스레 닥쳐올 때가 많다. 산길을 오르다 가시넝쿨을 만날 때처럼. 그러나 길을 가려면 가시넝쿨을 옆으로 밀쳐놓아야한다. 이런 난관을 만날 때마다 나를 다시 가족을 생각하게 한 힘은 어머니의 가늘고 거친, 따뜻한 손이었다.

사람을 삼킬 듯 황토 빛이 붉다. 일렁이는 파도의 모습을 닮은 낮은 구릉지는 어김없이 붉은 황토 빛이다. 주위를 둘러 높은 산이라고 해봐야 수십미터 높이이며 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물래 일보기에 제격인 소나무 숲이 전부인 시골마을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붉은 황토는 더욱 붉어 핏빛으로 변한다. 농사일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신작로는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질척거려 차라리 신발을 벗고 걸어가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비가 억수로 쏟아진 날이었다. 해가 아직 남은 시간에 부엌에서 달가닥 거리는 소리가 났다.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하는 듯했다. 아버지가 어디에서 오셨는지 큰소리가 났다. 어떤 말이 오고갔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부모님 사이에 큰소리가 오고 갔다. 긴장된 시간이 흘렀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니가 비에 젖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옷가지를 챙기더니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어머니가 나를 떼어 놓고 가시기 위해 타일렀지만 나는 어머니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어머니는 “엄마가 어디 댕겨올테니 조금만 형들하고 같이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나를 한참을 꼭 안아주셨다. 어머니의 따뜻함이 그대로 전달됐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집을 나가셨다. 타일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싸움으로 한시라도 빨리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맘 때문에 차라리 데리고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집을 벗어나 낮은 언덕에 올랐을 때 번개가 늦은 오후의 캄캄한 하늘을 가르고 천둥이 지축을 흔들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한참을 달리셨다. 덜커덩거리며 오는 버스에 올라타고 마을을 벗어났다. 이렇게 어머니와의 첫 나들이이자 처음 가보는 가족여행이었다. 농사일에 바쁜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살았다. 밭농사로 겨울엔 화장품 외판원을 하였다. 가족여행은 언감생신이었다. 열심히 살았지만 항상 쪼들리고 풍요롭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는 나들이가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처음 동구밖을 나가는 설레임이자 어머니와 함께 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어머니의 복잡한 심사로 첫 나들이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다음날 날이 밝자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야했다.

두텁고 거칠기 짝이 없는 농무의 손이었다. 낫질도 마다하지 않고, 거친 농사를 이겨내면서 거칠어진 손이었다. 어머니의 손이 생각났다. 들과 산에서, 땡볕과 눈보라 속에서 수도 없는 낙담의 시간을 견뎌왔을 손. 어머니의 그 손이 그때 나를 놓았더라면 어떠했을까? 가족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내가 짊어지고 가야한 삶의 무게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좌절과 어려움속에서도 자식을 안고 가야한다는 마음은 어머니가 최소한 지키고자 했던 가족에 대한 안위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없었다면 현재까지 내가 겪어야 했던 삶의 흔들림을 감당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오랜 세월 무거운 짐지게를 지고 살아온 내 어머니가 보낸 격려였기에 더 눈물겨웠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고비와 내 어머니가 보여 주신 깊은 마음 씀씀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가 지금 어머니의 그때 나이를 먹고 가족여행을 갔다. 부인과 딸의 손을 꼭 잡고 갔다. 이국적 풍경과 아름다운 경관에 여행의 기분은 만끽했지만, 그 때의 따뜻함이 나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또 딸에게 그 따뜻함이 전달이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국의 공간에 딸랑 남겨진 가족이였지만 당시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풍요 속의 빈곤일까. 뒤돌아볼 겨를 없는 바쁜 시간에 짜맞춰진 일상속에서 벗어나 천천히 가족과 함께 손을 잡고 온기를 느껴볼 시간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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