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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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찾아왔습니다.
  • 이경석 교장
  • 승인 2015.05.0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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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석 문태중 교장
교정의 봄은 아이들의 소리로 시작합니다. 인사소리, 매점으로 뛰어가는 소리, 우당탕탕 장난치는 소리, 점심 먹으로 우두둑 떼로 몰려가는 소리, 운동장의 공차는 소리, 수업 끝났다고 소리치는 소리.... 아침이 시작되면 교정은 그렇게 아이들의 온갖 소리로 채워집니다. 교정 입구에 서 있는 벚꽃, 식당 입구에 줄지어 있는 개나리는 아이들의 소리에 묻혀, 교정의 소품으로 전락하곤합니다. 문제는 아이들의 소리가 너무 지나쳐 가끔은 부딪치고 깨진다는 데 있습니다.

4월 초,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1교시가 막 시작할 즈음, 일단의 경찰들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0학년 0반의 학생들을 조사 좀 해야겠습니다!’ 워낙 가당치 않는 말씀이라 잠시 생각이 허클어졌습니다. 상황은 대충 이렇습니다. 전날 저녁에 흥분하신 어느 학부모님의 신고전화를 접수했답니다. 학부모님의 말에 의하면, 어느 학급에서 개학 후 당신 자녀가 지속적인 폭행으로 피해를 입어왔다는 것입니다. 전날에도 주먹다짐으로 코피를 쏟았으며, 추가폭행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장 해결되지 않으면 상부기관을 비롯한 언론방송에 신고하여 수련회와 같은 학교행사를 저지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고 했습니다. 당장 학생들을 소집해서 조사하면 어떻겠냐는 말씀에 아연실색했습니다. 수업이 한창인데...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수업을 중단하고 조사할 만큼 위급한 사안은 아니니 일단 1교시가 끝나고 하시도록 했습니다. 그분들이 잠시 차 한 잔 하는 동안, 담임선생님과 함께 상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는 황당한 상황인 듯했습니다. 교육의 달인이랄 수 있는 담임선생님이십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의 헌신이 탁월하신 분이어서 제가 늘 배우고 있는 분입니다. 가정방문이나 면담을 통해서 거의 모든 학부모님들까지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런 분이 전혀 낌새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니... 한편으로 섭섭한 마음이 피어올랐습니다. “지속적인” 폭행을 당했다면서 왜 담임선생님께 알리지 않았을까? 학교를 믿지 못해서였을까? 뭉게구름처럼 의문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사진첩을 들고 서른 두 명의 녀석들을 한 명 한 명 씩 들여다보았습니다. 도대체 하루 중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모두가 천사처럼 순박할 것 같은 녀석들인데, 정말 그 학부모가 말한 것처럼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개학 후 겨우 한 달 지났는데...

1교시 직후에 설문을 받았습니다. 한 글자라도 적은 친구들이 32명의 학생 중에 19명이었습다. 유의미한 어떤 내용도 없었습니다. 이 또한 어안이 벙벙한 일입니다. 경찰관들은 씁쓸하게 물러섰습니다. 또 의문이 피어올랐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더 큰 일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그 학급에 소소한 다툼이 있었고, 서로 화해하여 마무리 지었던 적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러한 황당한 일이 있고, 일주일 후 즈음에 다시 비슷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술에 취한 어느 학부모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학교를 다시 방문한 것입니다. 경찰관들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입니다. 민원이 접수되면 일단 현장을 방문하고, 당사자를 만나 사정을 살펴야하기에, 신고접수가 늘어남에 따라 학교에로의 출장이 잦은 모양입니다. 학부모들은 ‘왜 학교로 전후사정을 확인하지 않고 경찰로 먼저 신고하는 것일까?’  ‘학교의 신뢰도가 그 만큼 추락하는 것인가?’ 부모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학교는 배움의 場입니다. 아이들이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들로부터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리지어 사는 곳에 주먹다짐이 없다면 사람 사는 곳이 아니지요. 문제는 그런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느냐에 있습니다. 학교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연습장입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잘못은 용서가 되는 관대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의 일을 무조건 경찰로 해결하려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경찰들이 찾아올 때마다 ‘가르치는 힘’이 조금씩 잃어간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2015년 04월 10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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