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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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마당
  • 김성영
  • 승인 2015.05.0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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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영 비체스튜디오 사진작가
오전 아홉시.  부우아아아앙 뱃고동이 울린다.  항구의 기적소리.  새끼를 잃은 어미 소처럼 황망하게 울고 있는 뱃고동이 바닷가라고 여겨왔던 내게 ‘목포는 항구다’라고 눈물짓는 호소를 하는 듯하다. 

요즘 들어 여명이 푸르스름하게 다가오는 어슴새벽에 깨어나, 일상의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해, 스스로를 달래기 위한 수안으로 잡초에 내려앉은 이슬을 털며 걷는 일이 잦았다. 나만의 시간을 위해 반성하며, 새로운 도전의 새 삶을 다짐하며 걷다 보면, 회색빛 콘크리트 도심에서 맞이하는 아침과는 다르게, 푸근한 햇살이 와 닿는 유달산 자락 보리마당에서의 아침은 혼도된 나에게 또 다른 생기를 주었다. 도심 속에서 소외감을 받은 곳, 그러나 정서적으로 다가오는 ‘생동감’, 자연의 순리를 따라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보리마당의 봄, 서정적(敍情的)이라던가, 마음을 흐뭇하게 위로를 받는 매 순간마다 향수(鄕愁)를 불러주는 친숙함으로 여기어 어질머리를 앓을 때 자주 찾아와 따듯한 위안을 받는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리랑 고개라 불리어지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걷다보면 가파른 언덕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낡은 벽, 옹기종기 개량된 지붕들을 보듬고 위태롭게 서있는 모습이 눈길을 머물게 한다. 부스러질 듯 서있는 벽을 사이로 두고, 난간에 몸을 의지한 채 계단을 오르내리는 연로한 어르신들이 몹시 힘들어 보인다. 한평생을 버티어 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길을 걸었으련만 이름 모를 초록 풀포기들의 인사도 아랑곳 하지 않고, 쓸쓸히 굽은 등으로 한 폭의 한국화를 담고 있다. 이름 짓고 싶다. “목포의 흔적”이라고….
 
고령의 어르신들만이 이 길을 지키고 있으며, 가난과 한(恨)의 그 역사를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으리라 짐작 되었다. 만호동, 온금동, 서산동을 어깨동무하며 아우르고 있는 보리마당 다순구미. 아픔일까 기쁨일까, 조금새끼 또래 아이들이 째보선창 언저리를 담박질 하며 삼삼오오 꿈을 키워왔던 별들의 고향, 삐뚤빼뚤 낡은 책꽂이에서 한권의 책을 꺼내어 읽어 가는 듯, 얼기설기 널브러진 집들이 빼곡한 얘깃거리를 안고 한눈에 들어온다. 
 
‘선창’ 등대는 보이지 않아도 어선과 여객선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다도해 섬들이 시집을 떠나는 섬 처녀의 젖무덤처럼 부푼 가슴을 안고 바람꽃 물안개 속에서 빼꼼히 속살을 드러내며 수줍은 아침을 맞는다. 두고 온 홀어머니를 못 잊어 옷고름 입에 물고 흘린 눈물이 뱃고동을 울리었을까, 만선의 꿈을 안고 중선배에 올라 그길로 물 구신이 되어버린 낭군(지아비)의 울부짖음 인가. 노파는 굽은 허리로 애처로이 먼데 바다에서 눈길을 때지 못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목포의 봄소식이 가장 먼저 와 닿는 곳, ‘목포는 항구다’라며 오롯이 뱃고동을 위안삼아 묵묵히 서있는 지킴이가 되어, 무조건적인(절대적인) 사랑의 어머니 품처럼 앙가슴으로 항구를 보듬고 있는 보리마당의 언약. 

비로소 목포는 항구였다. 재개발을 한다는 명목으로 보존 되어야할 가치를 상실한 채 시한부가 되어버린 달동네, 또다시 목포의 눈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가. 눅눅한 바람벽에 비릿내를 머금고 지켜온, 삶의 질곡을 찾을 수 있는 곳. 유달산 자드락에 기대어 시아 바다를 품고 서러움 짙은 목포의 눈물을 담고 있는 곳. 숱한 애한과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채 백년이 훌쩍 넘는 개항의 역사를 말해 주는 곳이다. 이토록 소중하고 고귀한 목포사람들의 정서를 행정의 오만과 편견이 차가운 콘크리트 상자 속에 가두어 가고 있다. 흉측스럽게 허물어진 몇몇 집들은 그 상처를 치유할 수도 없게 되어 고스란히 행정의 핑계거리로 전락되고 마지막 남은 목포의 흔적을 지워 버리는 아뜩한 이별이 되고 말 것이다.

‘보리마당’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까.  남겨두고 싶다. 목포를.                                             

                                                            2015.봄(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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