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추진하는 대흥사 전 주지 몽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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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추진하는 대흥사 전 주지 몽산 스님
  • 류용철
  • 승인 2015.09.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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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남평 제작돼 달성사 이안

연대 확실 역사적 가치 충분해

-달성사는 어떤 절인가
달성사는 1913년 창건된 것이 유력하다. 목조지장보살반가상은 조선시대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달성사 창건 이전에 불상으로 다른 곳에서 제작돼 이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달성사의 목조지장보살반가상는 언제 제작됐나
달성사 극락보전에 이안된 아이타삼존불상상은 발원문에 의하여 1678년(숙종 4년) 강진 만덕산 백련사에서 조성한 불상으로 밝혀졌다.

이후 삼존불은 1942년 2월 완도 고금면 옥천사로 이안되었다가 1958년 음력 4월 25일 당성사 주지 상봉 경환 스님에 의하여 옮겨졌으며 이듬해 음력 10월 29일 불사를 마친 후 달성사로 봉안되었다.

이와 함께 명부전 불상들은 수습된 불복장물에 따르면 1565년 나주 남평 웅점사에서 조성된 것으로 밝혀져 임진왜란 이전에 조성된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남평 웅점사는 나주 운흥사이다. 목조 지장보살반가상은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복장물에는 의류, 직물류, 전적류, 다라니를 비롯한 기타 유물로 분류된다. 이것은 당대의 시대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기록물 이상의 유물로 사료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 목조지장보살반가상을 조작한 향엄은 어떤 사람인가
이들 제 존상을 주도적으로 조성한 수조각승 향엄은 16세기 초반인 1534년의 작품이 유존하고 있어서 16세기 조각승 가운데 유일하게 2점 이상의 작품을 남기고 있는 조각승이다. 30년 시차를 둔 두 조각들에서 동일한 양식적 특징이 간취된 점은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을 가능성과 함께 17세기의 조각승 계보를 16세기로 이어줄 중요한 실마리라고 평가된다.

- 불상연구에 복상의식이 왜 중요한가
불상을 조성하거나 중수 할 때 복장의식에 따라 그 내부에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해 봉안한 불복장물은 여러 방면에서 귀중한 여구 자료를 제공한다. 복식유물도 출토복식에서는 보기 어려운 색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고, 고려시대 복식과 같은 이른 시기의 유물을 실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복식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

-달성사 목조지장보살반가상 의복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나
달성사 의복은 형태상 이중칼깃, 이중칼섶, H형 어깨바대, 2쌍 고리고름의 내가지 특징이 확인된다. 남아있는 무 조각을 통해 이 유물은 직사각형 무가 있는 직령 또는 답호임을 알 수 있었다. 유물의 파손이 심하므로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직사각형 무가 달린 직령과 형태를 참조하고, 달성사 유물과 가장 가까운 형태인 이언충의 유물 4점(직령 2점, 답호 2점)을 실견하여 원래의 형태를 도식화로 복원하였다.

달성사 유물의 직물은 경사에 견사와 면사를 한 올씩 번갈아 넣고 위사에 면사를 넣어서 짠 사면교직이다. 경상도 함창의 명주공장에 의뢰하여 최대한 유물에 가깝게 직물 제작한 후, 직령 1점과 답호 1점을 완성하였다.

- 국보지정을 추진하게 된 동기는
달성사 목조지장보살반가상은 반가의 형태와 상호를 비롯한 각부의 제양식 수법이 고려시대 작풍을 보이는 임란 이전의 조성으로 주목된다. 특히 보장물 발견 조사로 조성과 중수 개금의 절대 연대와 조성 사원을 알 수 있어 국가 지정 보물의 가치가 충분하다.

현재의 왜색 건물과 사찰의 경관을 그르치는 주변의 모든 설치물을 철거하여, 지정 성보를 보존하고 있는 사원답게 종합적인 계획안을 마련하여 심의해야한다.

유용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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