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길로 찾아가는 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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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로 찾아가는 한국고대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6.05.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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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로 찾아간 한국고대사는 어떤 모습?

바닷길의 관점에서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명한 책이 나왔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 강봉룡 교수(사학과)의 ‘바닷길로 찾아가는 한국고대사’가 그것. 이 책은 ‘반도’에 대한 재조명으로 시작한다. 일찍이 식민사관은 반도에 대하여 대륙도 아니고 섬도 아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정체성의 상징인양 오도했다. 이른바 ‘격하된 반도성론’이다. 그 여파로 우리는 한반도의 공간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반도는 해양과 대륙을 이어주는 교두보로서 문명의 발생과 교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반도와 이탈리아반도에서 유럽 고대문명이 태동하였고, 이베리아반도에서 유럽 대항해시대의 서막이 열렸다는 것.

한반도가 바닷길을 통해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를 매개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주요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시대까지는 연안해로가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중심 교통로로 기능했다. 연안해로는 한반도의 사정에 따라 소통과 경색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연안해로가 장기간의 경색 국면을 맞게 되면서 동아시아사회는 경제적, 문화적 고통에 직면하였다.  동아시아사회는 극단적인 전쟁에서 그 타개책을 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마침내 ‘동아시아 대전’으로 폭발하였다. 660년 소정방의 황해 횡단작전 성공은 동아시아의 바닷길을 연안해로 중심에서 황해 횡 사단해로로 확대하는 획기적 계기가 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 동아시아사회는 기왕의 연안해로는 물론 황해 횡?사단해로를 구사하고, 동남아 방면으로 확대된 ‘해양실크로드’와 연결되면서 문명교류의 전성시기를 맞게 되었다. 장보고는 9세기에 완도의 청해진을 중심으로 세계의 바닷길로 진출하면서 국제 해양무역의 대성자로 부상하였다. 왕건은 장보고가 서남해지역에 남긴 해양유산을 장악하고 계승함으로써 고려 해양강국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바닷길로 찾아가는 한국고대사’는 기왕에 홀시했던 바다라는 공간을 역사인식의 주요 관점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사뭇 다른 고대사상을 안출하였다. 일국사에 그쳤던 답답한 폐쇄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역동적인 열린 시각으로 동아시아 문명교류를 포괄하는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그려냈다. 그 과정에서 고대 동아시아사회에서 한반도의 주도적인 역할을 부각시킨 것도 눈에 띈다.  
<목포대도서문화연구원 송기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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