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사랑의 편지쓰기 공모 전남도교육감상 수상작
상태바
제4회 사랑의 편지쓰기 공모 전남도교육감상 수상작
  • 배해금
  • 승인 2016.06.22 1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포여자고등학교 배해금
▲ 목포여자고등학교 3학년 배해금

아버지, 어머니 저 막내 해금입니다. 시계불알이 부지런히 움직여 제가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네요. 지금 하늘이 매우 화창합니다. 부모님께선 오늘도 늘 그랬듯이 고된 일을 하고 계실 겁니다. 좋고 싫고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이. 

얼마 전 학교에서 날아간 편지를 보셨을 것입니다. 부모님께선 제 성적표를 일체 들여다보지 않으시니 으레 성적표 이겠거니 하고 저에게 전해주셨습니다. 그것이 학교에서 제가 쓴 어버이 날 편지인지도 모르시고요. 제가 그것이 편지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아 그러냐며 반가운 얼굴로 봉투를 뜯고 제 친필을 소리 내어 읽으셨습니다. 그러나 편지에 써진 짤막한 단 하나의 문장은 어머니의 얼굴을 순식간에 실망으로 물들게 하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소통하고 대화하는 가족이 되어요.” 이 한 문장보다 제가 쓸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이 한 문장만을 쓴 이유는 제가 장황하게 하는 모든 말들이 결국엔 부모님과 더 대화하고 더 소통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준 짧은 시간엔 제 옹졸하고 속되고 고집스런 마음밖에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울림통 달린 짐승마냥 울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대충 쓴 한 문장이 부모님의 마음을 속상하게 하리라곤 저는 몰랐습니다. 늦었으나 제 어린 사랑이 담긴 편지를 읽으시고 조금만 더 버텨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띄웁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아버지 말마따나 건방져졌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눈 한 번 부릅뜨면 찔끔 눈물 먼저 나던 어린 것이 하루 종일 부모님의 눈 밖에서 생활하게 되니 살 판 난 격이 아니겠습니까, 제 생각으론 조금 더 즐거운 것을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항상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할머니 계셔서 안 돼, 아빠가 안보내주실거야, 뭐라고 하시겠지. 이런 저런 걱정들로 시작해 나는 남보다 더 소극적이었고 어른들에게 거역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아무 투쟁 없이 받아들이는 나약한 인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부모님의 보살핌에서 약간 벗어난 지금 깨달은 것은 비비개연, 어느 것이나 그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워했던 어른들은 생각보다 어렸고, 투박했고, 공감하지 못했고, 목에 핏대만 열나도록 세웠습니다. 찍어 누르려는 습성은 누구나에게 있었습니다. 우월해지려는 본성은 누구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비판적인 생각들은 저를 건방지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을 설득할 줄 알고 거역할 의지가 생겼습니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른 체 콧대는 높아졌습니다. 부드럽게 가져주는 관심이 싫었습니다. 제 유년과 통째로 바꾼 관심인 것 같아서, 제가 이렇게 함으로써 가져주는 관심인 것 같아서, 제가 다시 돌아간다면 그 관심이 사그라질 것 같아서요. 저는 지금 부모님께 고백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또 다시 깨달았습니다. 저 또한 어리고, 투박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목에 핏대만 세우는 고집쟁이라는 것을요.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퍽 좋은 분 아니시겠습니까. 그 흔한 사교육 한번 강조하시지 않으신 덕에 저는 세상에 여러 갈림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지금도 제 성적표를 취급 안하시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곤 책꽂이에 꽂힌 책만큼이나 무궁무진한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제가 어떤 꿈을 꾸어도 내 행복을 우선으로 하셨고 지나가는 말로 안정적인 직장을 말씀하셔도 결국엔 제가 하고 싶은 것에 웃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나이가 드셔도 사랑스러운 사람이셨고, 아버지는 언제나 미웠지만 존경하는 사람을 말하라면 언제나 아버지였습니다. 부모님은 예외 없이 자랑스러운,  언제나 제 앞에서 굳센 발걸음으로 버텨주시는 분이셨죠.

큰 식당을 저희끼리 꾸려가랴 부모자식 간에 포기한 것이 많지만 어제 말씀하셨듯이, ‘소득대실,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손해를 본다.’ 지금 순간의 행복을 얻으려다보면 나중엔 큰 손해를 보게 되겠지요. 평일에 학교, 주말엔 일하는 것이 일주일이 계속하여 연속성을 띠고 있는 것 같아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지 힘들지만, 한편으론 또래의 친구들보다 성숙해진 것 같아 요. 하지만 다 이렇게 살았으니 너도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어쩔 수 없다는 불가피성은 저는 싫습니다. 그저 가족끼리 다독이며 사는 게 부모님이 그러하였듯 제 꿈이기도 하니까요.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사랑하는 부모님! 부모님께서 허물어지면 저는 이제나 저제나 갈피를 못 잡습니다. 건방진 체 해도 아직 속은 여리디 여린 막내딸일 뿐입니다. 애교 없이 어른인 체 굴어도 큰 상을 받아도 나이가 들어도 제 나름의 상황은 있지만, 생각은 있지만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소통하고 조금만 더 이해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한 평생 같이 살았어도 어머니, 아버지 싸우시듯. 부모자식 관계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러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부모자식관계는 말로 하지 않으면 모르는 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하겠습니다. 지금도 한창 바쁘실 부모님의 퉁퉁 부은 손이, 베이고 세월만큼 박인 굳은살이 헛되지 않도록.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오늘은 집에 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부모님께 뽀뽀한 번 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작은 딸 해금 올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