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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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6.10.1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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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창옥. 목포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햇볕이 비추고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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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사건 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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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의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 미소를 띈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 때 화려하고 성대한 가면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공동묘지를 지날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 다섯의 어린나이로 세상을 떠난 클라라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아 그녀는 어린 시절의 나의 단짝 친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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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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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기 ‘크누트 함순’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들의 모습,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우리 모두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만나 적어도 몇 번쯤은 읊고, 들었을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수필가인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이다.

음유적이고, 서정적인 이 수필이 우리에겐 익숙하고 감동을 주어 지금도 한 두 구절은 작은 기억들로 떠 올리곤 한다.

우리의 공동체에도 너무도 많은 슬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때 300여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이 차디찬 바닷물에 잠겨 희생되었음에도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또 책임도 지지 않는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메르스 사태’때 국민의 생명보다 대기업을 보호하려는 작태, 국민을 기만하며 끊임없이 불신을 양산하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위선적이며 무책임한 행태, 꽃다운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가 되었던 분들의 한을 동의도 없이 몇푼의 돈에 팔아 넘기며 국가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며 자화자찬하는 몰염치, 몰역사적인 정부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물질의 탐욕에 희번뜩 거리는 눈길이 생명의 젖줄인 강에 까지 미쳐 강이란 강을 다 쳐막아 생명체를 질식케하고 녹색 에메랄드 빛으로 강물을 색칠하고도 모자라 산봉우리, 골짝마다 쇠막대, 구조물을 세워 정기를 앗아가는 행위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에 마저 거짓되고 왜곡된 역사를 주입시키려는 국정화 교과서 시도, 다양성을 죽이고 확일화된 교육으로 후퇴하는 미련하면서도 고집스런 모습,

쌀값을 보장하라는 70살의 농부에게 물대포를 쏴 사경에 이르게 하여 결국 죽게 해놓고 부검 운운하며 본질을 호도하는 생명의 존엄성마저 무시하는 천박한 군상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분단의 상황에서 평화의 작은 지렛대가 될수 있는 개성공단을 하루 아침에 폐쇄하는 단호함(?),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입주 기업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물론 북측의 핵실험, 미사일실험 등 (그들의 생존적 행위일지 모르나)의 대응 행위라곤 하나 주민의 동의없이 실질적으로 북측의 미사일 방어에는 도움이 안된다는 사드 배치 확정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평화! 평화를 부르짖으며 모두의 마음을 모아 그 방법을 모색해도 어려운 상황에 평화가 아닌 전쟁의 가능성을 계속 외치는 대통령의 목소리는 우리를 슬프게, 절망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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