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함께 길을 만들다

2017-07-25     목포시민신문

사람에게 학교는 가정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학교에서 보낸 시간과 경험은 당사자에게 지난 한 때의 추억일 뿐 아니라, 그 사람됨을 형성하는 한 요인이 된다. 그래서 개인의 생애사에서 소중한 것은 어느 학교에 다녔는가보다 어떤 학교생활을 하였는가일 것이다. 학창시절에 문제 행동을 하여 ‘문제아’가 된 아이들은 교사와 부모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학교에서 길을 잃고’ 고통을 받는다. 이처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남는 고통은 졸업 후에도 그 사람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학교의 문제아는 사회의 문제 어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 해결을 위한 적절한 도움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책의 저자 로스 W. 그린은 아동의 문제 행동을 이해하고 그 해결을 돕기 위해 15년 전에 CPS(Collaborative and Proactive Solutions) 모델을 창안하고 이를 다양한 현장에서 실천하는 학자이다. “아이와 함께 협력하며 문제 행동을 예방하기 위한 사전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이 방법은 그동안 학교뿐 아니라 가정, 병원, 사회복지 시설, 소년원에서 적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CPS 모델을 활용하는 지침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늘어났고, 그 요청에 부응해서 집필된 책이 바로 『학교에서 길을 잃다』(2014년 미국판)이다. 이 책은 지침서의 성격이 있지만 590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품고 있다. 저자는 지난 15년 동안 CPS 모델의 적용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들과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유념하였고, 이를 깊이 성찰한 결과를 책에 담았다. 이 책은 개념들을 규정하고 그 개념들에 관련된 이론들을 설명하기보다 CPS 모델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사례들과 이야기들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책은 CPS 모델을 이해하고 적용하면서 심화시킨 내용을 질의응답(Q&A) 방식으로 제공한다. 

학교에서 ‘문제아’가 보이는 특성은 무엇일까? 흔히들 ‘문제아’는 “남을 교묘히 조종하고, 주목받으려 하고, 강압적이고, 목적의식이 없고, 한계를 시험하려” 든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CPS 모델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오랜 관찰과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서 문제아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아의 문제 행동과 태도는 아이의 의지보다 ‘사고력과 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에게 상벌을 가하여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부족한 능력을 배울 수 있도록 기회와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더 낫다. 실제로 문제아들은 그들이 보이는 문제 행동을 고치려는 어른들의 주장과 요구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 행동을 고칠 수 없어서 고통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한 어른들의 적절한 대응은 아이의 ‘뒤처진 능력’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갖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문제아에게 부족한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가? 흔히들 그 적임자는 교사와 부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온갖 수고와 끊임없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문제아들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저자는 새로운 접근 방식(“플랜 B”)을 제안한다. 문제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능력은 어른과 아이의 협업으로만 길러진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문제아에게 결여된 능력과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그 활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어른들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과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제시하는데, 이 대목을 읽는 독자들은 아이와 어른의 협업이 지닌 교육적 의미를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른과 아이가 공동의 목표를 갖고 함께 일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아이의 문제를 놓고 교사와 부모가 함께 일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어른과 아이, 교사와 부모가 힘겨루기하거나 효율성만을 추구하기보다 서로 만족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혜를 모은다면 ‘학교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에게 ‘함께 길을 만드는’ 새로운 대안을 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희망과 기대를 지닌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임희숙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