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법무사)의 산방야화

민족의 미래, 해원(解怨) 2

2018-01-31     목포시민신문

오나라 왕 수몽에게는 제번(합려의 부), 여제, 여매, 계찰 등 네 아들이 있었으나 막내인 계찰의 인품과 재능이 뛰어나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간곡히 사양하여 나중에는 백성들까지 나서 간하였음에도 아예 집을 떠나 시골로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기원전 561년 수몽이 죽자 할 수 없이 제번이 왕위에 올랐다가 초나라와 전쟁을 벌이던 중 기원전 548년 화살을 맞고 전사하면서 다음 보위를 형제에게 상속하도록 유언 하였다.

둘째인 여제가 왕위에 올랐다가 물러나고 섯째인 여매가 즉위하였으나 전쟁터에서 죽으니, 드디어 계찰의 차례가 되었음에도 아예 종적을 감추어 물리치므로 계찰의 아들인 요가 기원전 526년 왕위에 올랐다.

요의 등극에 불만인 한 사람이 있었으니 장자의 아들인 태자 광(합려)으로 자신이 오르지 못한 왕위를 틈만 나면 되찾으려 혈안이 된 것을 안 오자서는 급기야 자객인 전제를 태자에게 소개하여 기원전 514년 태자 광이 요왕과 문무백관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어 생선에 감추었던 비수로 전제가 요왕을 찔러 암살토록 하였다.

주변을 정리한 태자 광은 드디어 오나라 합려 왕으로 등극하였으며 오자서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중용 되어 초나라에 복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합려는 백성의 신망이 두터운 삼촌 계찰의 지지를 끌어내고 오자서를 중용하였는데, 원래는 제나라 사람으로 내란을 피하여 오나라에 망명한 손무가 13권에 달하는 손자병법을 완성하자 오자서는 이를 합려 왕에게 천거하여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 무렵 초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극완과 백주리가 주살을 당하였고 백주리의 손자인 백비가 오나라로 망명해 온 것을 자신과 같은 딱한 처지라 천거를 하여 대부로 삼아 이후 3년간 내정과 경제를 안정시켜 오나라의 군대는 날로 강성하였다.

기원전 511년경 오의 합려는 손무를 군사로 오자서와 백비를 거느리고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와 다섯 번에 결쳐 대 접전을 벌여 5전승으로 초나라의 수도 영을 기필코 점령하였다.

초나라에 입성한 오자서는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내 채찍으로 300번 매질을 하여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았다.

적으로 돌아선 친구인 초나라의 신포서가 그 소식을 듣고 오자서에게 사람을 보내어 가혹한 복수를 책망하자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이 때문에 천리를 따르지 않고 역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반박 하였다.

오에 충성을 맹세하였던 월이 자꾸만 성장을 거듭하여 위협을 느낀 합려는 기원전 496년 월왕 윤상이 죽고 구천이 등극하자 월나라를 공격하였다.

전세가 미미한 월 왕 구천은 군사인 범려의 도움을 받아 합려에 대항하여 진군 앞에 일부 군사를 3열로 정열 하도록 세운 뒤 갑자기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의 목을 칼로 잔인하게 찔러 자결토록 하였다.

오의 군사들이 기상천외의 처참한 장면에 넋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월이 주력군으로 자결한 동료의 피 값을 보상 받으려는 듯 결사항전의 자세로 오나라 군대를 급습하니 전열이 무너지고 패퇴하기 시작 하였다.

혼비백산한 오의 군사들이 퇴각하는 동안에 합려왕도 아버지와 똑같이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었는데 그로 인하여 상태가 악화되어 아들인 부차에게 자신의 원한을 반드시 월에게 갚아주도록 유언하고 유명을 달리 하였다.

이로써 오나라와 월나라의 철천지 원한의 서막이 시작 되었다.

오의 부차는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의 치욕스런 죽음과 유언을 잊지 않으려 땔감위에서 잠을 청하고 날마다 아버지의 유언을 외치며 각오를 다지기를 2년 동안 군사를 양성하고 군량을 비축하여 날로 국력이 강성 해졌다.

기원전 494년 후환이 두려운 월의 구천이 먼저 선공을 하였으나 오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패퇴하여 추격을 피하다 회계 산에 포위되어 자결을 하려던 구천에게, 범려와 문종이 오나라의 재상 백비가 재물을 탐한다 하니 그에게 재물을 보내 목숨을 보전하여 재기의 방법을 강구토록 하였다.

오자서는 부차에게 월 왕 구천은 고통을 능히 견뎌 후환이 될 것이 분명하니 지금 즉시 목숨을 거두도록 누차에 걸쳐 간하였음에도 듣지를 않았다.

월 구천의 재물을 받은 백비는 오자서와 같은 초나라 사람으로 망명하여 부차의 눈을 가려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제는 적으로 돌아서 또다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심게 하였다.

부차는 백비의 말만을 듣고 월 구천의 항복을 받아들여 노예로 삼아 말에 오를 때는 범려의 등을 밟아 오르고 구천으로 하여금 말고삐를 잡도록 하면서 온갖 구차한 일을 시켰는데, 심지어는 구천이 목숨을 보전하기에도 두려운 나머지 범려의 간언에 따라 몸이 불편하다는 부차의 배설물을 혀로 핥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월에 남아 백성들을 관리하던 문종이 또다시 백비에게 온갖 재물을 바치고 구천을 돌려보내줄 것을 부탁하고 범려는 인물이 빼어난 서시를 동시에 후궁으로 바치니 부차는 한순간 아버지의 유언을 잊고 구천을 본국으로 자유롭게 돌려보내기에 이르렀다.

참담한 모욕과 굴욕을 겪으며 고향으로 돌아 온 구천은 초가집에 땔나무를 깔고, 고기를 먹지 않고, 무명옷을 입고, 방안에는 짐승의 쓸개를 걸어두고 매일 빨아대며 복수의 의지를 다지는데 처절한 원한은 날이 갈수록 더욱 굳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