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홍선기 목포대 교수] 도시와 바람길

2020-09-25     목포시민신문

[목포시민신문] 8월말부터 9월에만 세 차례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다. 태풍 바비(Bavi), 마이삭(Maysak), 하이선(Haishen)으로 명명된 세 번의 태풍은 과거 태풍경로의 선례를 깨고, 한반도에 직접 혹은 근접 상륙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특히 마이삭 태풍의 영향으로 남해와 부산, 울릉도가 큰 피해를 입었다. 울릉도의 피해는 막대하여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어야 할 정도이다. 태풍은 북태평양 남서부, 즉 동남아시아 주변 해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으로 강력한 바람이 동반되어 북상한다. 대체로 주요 태풍의 경로는 류큐 열도를 따라서 일본 본토에 상륙하던지 동중국해 쪽으로 선회하여 중국 대륙에 상륙하여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과거에 한반도에 상륙, 막대한 피해를 준 기록적인 태풍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세 차례의 태풍처럼 태풍경로가 점차 한반도로 집중되고 있는 현상을 기상학자들은 최근의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평가한다. 필자도 일부 동의하는 결과이다. 지구온난화에 의하여 시베리아 동토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몽골과 중국 내몽고의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한반도 주변의 상승된 해수온도가 지속되는 등 고온의 에너지를 유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륙으로 북상하는 태풍을 저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태풍의 현상은 기정사실로 받아드려야 한다. 어쩌면 이번 세 번 연타의 태풍 상황을 보면서 세계적 기후위기 상태에서 우리나라 정부와 지자체가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를 준 것이라고 믿고 싶다.

마이삭과 하이선이 스쳐 지나간 부산이나 강릉과 같은 연안도시의 피해가 컸다. 500mm급 강우에 의한 도시침수와 산사태 발생과 함께 최대풍속 35m/s를 기록한 강풍으로 인한 도심 건물 외벽이나 유리창이 파손되는 피해가 속출하였다. 특히 부산에서는 해운대에 건설된 150m 이상의 초고층 주거건물의 유리창이 파손되었고, 주차장이 침수되어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초고층 건물이 입주하면서 일조권 때문에 주변 거주자들과 마찰이 있어 왔지만, 이제는빌딩풍으로 인하여 도심의 미세기후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은 일상적인 바람보다 20%이상 가속하는 경향이 있어서(벤츄리 효과) 태풍의 영향권에서는 빌딩 자체가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효과(windbreak effect)보다도 오히려 바람이 좁은 건물 사이로 빠져 나오는 동안 빌딩풍을 형성하여 더 센 강풍을 만들어 내는 부정적 효과가 있다. 특히 고층건물과 건물 사이가 좁을수록 통과하려는 바람에 압력을 주게 되어 더욱 센 바람이 생성되고, 견뎌내지 못한 건물은 외벽이나 창문 등이 파손되게 된다. 태풍은 자연재해이지만, 빌딩풍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종 재난인 것이다. 그래서 대도시에 건설되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러한 빌딩풍의 영향을 최소화 시키고자 아파트 건물의 배치를 조정하거나 건물의 디자인을 개량하여 단지내 바람길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고 있다. 과거에는 일조권이 중요한 주민의 권리였지만, 이제는 바람도 삶의 질을 바꾸는 중요한 생활 지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초고층 건물이 생기고 있다. 목포에도 4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속속 건설되고 있다. 건축가들이 건축 설계 단계에서 이러한 도심의 바람길에 대해 고민했을 것으로 믿고 싶다. 특히 목포는 해안도시이고, 늘 근접거리에 태풍이 상륙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826, 한반도 서남해를 가로질러 통과한 태풍 바비의 경우, 최대풍속 47.4m/s의 강풍과 파도에 의하여 흑산면 가거도의 방조제가 파괴되었고, 목포에도 많은 비를 내렸다. 만일 이 태풍이 목포에 바로 상륙하였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일본의 경우, 외국인에겐 짜증이 날 정도로 태풍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본토에 접근하기 수 주일부터 태풍의 발생, 경로와 규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안내해 준다. 시민들에게 태풍에 대응하고 준비할 시간을 충분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이라 평소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기록적인 강수량과 바람의 영향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태풍 하이선이 일본 규슈 남부에 근접할 때 최대풍속 59.4m를 기록했다고 한다. 위세가 꺾긴 하이선이 한반도에는 부산과 울산 일원에 피해를 주며 스쳐지나갔지만, 무척 위급한 상황이었다.

기후변화란 지구적인 규모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나는 자연의 사건이지만, 최근 갑작스럽게 발생하고 있는 세계 각지의 다양한 환경변화는 인류가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들로 기록된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현대 사회는 갑작스런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넉넉하지 않은 기후위기상황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는 자연생태계 문제 뿐 아니라 도시공간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인류 생존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오키나와나 가고시마, 한국 부산에 상륙했던 초강력 태풍이 목포나 군산, 인천에 상륙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떤 도시재생 보다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재생,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그린뉴딜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시점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살던 근대도시의 모습은 이제 기후위기와 함께 새로운 구조와 기능을 갖춘 도시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태풍의 피해를 연례행사 치르듯이 잊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리 큰 피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