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에세이
김환기 지음
(재)환기재단 2005년 9월 1일 발행
[목포시민신문] 이 책은 1995년에 출간되었던 김환기 화백의 수필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2005년 환기미술관 에서 김환기 화백의 단문과 일기, 다채로운 드로잉을 곁들여 같은 제목으로 새롭게 엮어 만든 에세이집이다. 솔 직하고 담담한 문체와 사유의 행간,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드로잉은 이 책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2021년 현재에도 새롭게 인쇄판을 바꾸어 출간되고 있다.
이 책은 고호의책방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김환기 생가를 다녀온 여행객들이 목포에 들러 김환기의 책을 발 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책을 꼼꼼히 살펴본 책방 탐방객들은 이 책을 선뜻 구매 하는 것 이다. 저자의 인간적인 체취가 행과 행사이, 글과 글 사이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일까.
<내 고향은 전남 기좌도. 고향 우리 집 문간에서 나서면 바다 건너 동쪽으로 목포 유달산이 보인다. 목포항에서 백마력 똑딱선을 타고 호수 같은 바다를 건너서 두 시간이면 닿는 섬이다. 그저 꿈 속 같은 내 고향이다. 겨울이 면 소리 없이 함박눈이 쌓이고 여름이면 한 번씩 계절풍이 지나는 그런 섬인데 장광(長廣)이 비슷해서 끝에서 끝 까지 하룻길이다. 친구들이 “자네 고향섬이 얼만큼 크냐”고 물으면 “우리 섬에선 축구놀음은 못한다”고 대답한 다. 공을 차면 바다로 떨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섬에는 수천 석씩 나는 평야도 굽이굽이 깔려 있고, 첩첩 산도 겹겹이 둘려 있어 열두 골 합쳐 쏟아지는 폭포도 있다. 순하디 순한 마을 안산에는 아름드리 청송이 숨막히 도록 총총히 들어차 있고 옛날엔 산삼도 났다지만 지금은 더덕이요 복령(茯苓), 가을이면 송이버섯이 무더기로 난다. 낙락장송이 울창하게 들어찬 산을 바라보며, 또 그 산 속에서 자란 나에게는 고향 생각이란 곧 안산(案山) 생각뿐…. 이 봄에도 섬아가씨들은 양지바른 산기슭을 찾아 검밤불이랑 냉이랑 캐겠지…. >
책에 수록된 ‘고향의 봄’이라는 제목의 짧은 수필 전문이다. 1962년 3월에 쓰여진 이글 끝에는 그림이 한 점 묻어 있다. 낙서처럼 펜으로 그린 고향 풍경이다.
저자의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흠벅 묻어난다. <늘 산을 생각하면서도 산에 못 간다. 요행히 학교가 산비탈에 있어 산에 사는 것 같고 화실 창 밖으로 북한연 봉(北漢連峰)이 내다보이니 생활이 흡사 화의간산격(畵意看山格)이다. 창 밖, 그 중에도 꾀꼬리는 지금도 가까이 와서 울고 있으니 자연의 혜택도 이만하면 넘칠 정도다. - 졸음이 오면 웃통을 벗고 뙤약볕에 나가 운동장을 한 바퀴만 돌면 되리라. 후정(後庭)에 흐르는 물이 있으니 목욕도 하고…. 이 여름은 이렇게 지내며 급속도로 일을 계속 할 생각이다.> 일에 더욱 매진하려는 의지와 애써 자족하며 스스로를 독려하는 저자의 마음이 읽혀진다.
1960년 7월에 쓴 ‘산’ 이라는 제목의 단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치열했던 화가 김환기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김환기는 1913년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에서 태어나 20세기 한국미술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1974년 뉴욕에서 뇌출혈로 생을 마감했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당연한 이치다. 저자에게 가 치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저자의 일기 중 한 대목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미학도 철학도 문학도 아니다. 그저 그림일 뿐이다>.
/고호의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