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소비에서 닻이 덫이 되지 않도록 닻을 잘 내려야 한다.
김수미 한국소비자연맹 전남‧목포 회장
[목포시민신문] 우리는 물건을 살 때 스스로 꽤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가격을 비교하고, 필요하지 생각하고, 본인 나름에 기준을 세운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은 그리 자유롭지는 않다. 마음이 어느 부분인가 붙잡혀 있어 그 마음이 기준이 된다.
그 시작은 대개 아주 사소하다. 처음 본 가격, 처음들은 조건, 처음 받은 설명, 처음 받은 추천 등 그 순간 우리의 판단은 조용히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닻내리기 효과’라고 부른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닻을 내리면 그 자리에 머물 듯, 우리의 생각도 처음 접한 정보에 묶여버린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가방의 제품의 가격을 전혀 모를 때 소비자에게 가방의 가격을 물어본다. “이 가방은 30만원 이상일까요?” 또는 “ 이가방은 50만원 이상일까요?”라고 질문하면 30만원에 50만원이라는 정보를 ‘닻’으로 이용하여 응답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래 이 가방의 경우 70만원이었는데도 소비자들은 30만원에서 50만원이라는 비교점에서 그 정보에 따라 답을 수정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정가 100만원, 오늘만 50만원입니다.”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반값이다. 싸다.” 라며 100만원이라는 기준에 마음을 맡겨버린 상태이다. 그 제품이 정말 50만원의 가치가 있는지 혹은 애초에 필요했던 것인지 묻는 일은 뒤로 밀린다. 예전에 방송인 전현무씨가 명품을 70%, 90% 할인하면 무조건 사고 본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제품의 진정한 가치보다는 70~90%할인이라는 닻에 갇혀 버린 것이다.
소비자 상담을 하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처음에는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할인을 받으니까 괜찮은 것 같아서 계약했어요.” 그 말속에는 하나의 공통된 흐름이 있다. 판단은 스스로 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만들어진 기준 위에서 움직였다는 점이다.
안데르센의 미운오리새끼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오리새끼 형제 중에서 가장 못생겨서 식구들에게조차도 따돌림을 당하고 모두에게 항상 놀림을 받았다. 다른 오리들과의 다른 모습에 항상 불행했다. 그러나 미운오리새끼는 오리가 아닌 백조였다. 이 동화에서 우리는 오리새끼라는 닻을 내리고 생각한 결과 오리의 기준으로 백조를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이 ‘기준’이 늘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높게 설정된 가격, 과장된 혜택, 지금 아니면 놓친다는 말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닺을 내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선택을 한다. 어쩌면 소비자 피해의 시작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판단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멈춰야 한다. 가격을 보기 전에, 할인을 따지기 전에 이 질문 하나를 먼저 꺼내보는 것이다. “이 물건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가.” 그 질문을 통과하지 못한 소비라면 아무리 싸도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결국은 비싼 선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마음을 내어준다. 처음 본 숫자 하나에, 한번 들은 말 한마디에, 기준이 바뀔 수 있어 더더욱 가끔은 닻을 걷어 올려야 한다. 처음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기준으로 다시 판단하기 위해서이다.
닻내리기 효과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지속적이고 변화시키기 힘든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해 볼 여지는 있다. 어떤 정보가 주어질 때 그와 정반대의 닻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소비에서도 재무설계에서도 닻이 덫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