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빛바랜 저항의 시인, 그 변절의 궤적을 묻다

-목포 김지하 포럼 개최에 부쳐-

2026-08-25     목포시민신문

[목포시민신문] 2026년 8월 22일과 23일, 목포와 해남 일대에서 ‘김지하 문학과 장소성’을 주제로 한 김지하 포럼 및 문화제가 열렸다. 목포문학관과 목포문화원의 후원으로 진행된 이 행사는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과거의 시인을 기리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그러나 그의 온전한 행적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공간인 목포에서 그를 추모하는 헌정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은 깊은 우려와 탄식을 자아낸다. 심지어 ‘목포 김지하 포럼 준비위’까지 꾸리고 활동하는 인사들까지 있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목포문인협회과 목포작가회의 등 지역의 대표 문학단체에서는 이에 동조한 문인들이 없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적지 않은 애국계몽운동가들이 독립을 외치며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자고 앞장섰다. 그러나 일제의 통치가 길어지고 탄압이 거세지자, 그들 중 일부는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현실적 선택"이라는 자기합리화 속에 친일 부역의 길로 빠져들었다. 시작은 뜨거운 애국이었으나 끝은 참담한 변절이었던 그들의 씁쓸한 궤적은, 훗날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결국 그 후예들과 결탁하며 과거의 동지들에게 비수를 꽂은 김지하 시인의 말년과 묘하게 겹쳐진다.

1970년대 유신 독재에 맞서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그의 저항은 분명 한국 민주화 운동사의 중요한 족적이다. 하지만 1991년 청년들의 분신 정국에서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며 쏟아낸 냉소는 민주 진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후 그의 언어는 권력이 아닌, 깨어있는 시민과 옛 동지들을 향한 날 선 저주로 변모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운하 정책을 옹호하며 "대통령에게 꽃다발이라도 줘야 할 상황"이라 칭송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는 추모객들을 "악을 쓰는 맑스 신봉자들"이라 매도했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는 "박정희를 다 넘어섰다"며 박근혜 후보 공개 지지를 선언하는 당당함을 보였다. 나아가 야당 후보 지지자 48%를 "공산화를 좇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백낙청, 리영희 등 당대의 지성들을 "깡통 빨갱이", "쑥부쟁이"라며 구시대적 색깔론으로 모욕했다. 스스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짓밟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셈이다.

특히 그가 "북한에 돈을 갖다 바쳤다"며 맹비난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에서, 지자체 유관기관의 후원 속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를 넘어선 모독에 가깝다. 애국계몽운동가들의 친일 행적이 '시대적 아픔'이라는 핑계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듯, 과거의 민주화 투쟁 경력이 그가 말년에 보여준 반민주적 막말과 혐오 조장을 덮는 면벌부가 될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평가해야 한다. 화려했던 과거의 시(詩) 구절에만 얽매여 그가 한국 사회에 던진 참담한 언어의 폭력과 변절의 기록을 지워버린다면, 그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다. 진정한 추모와 기념은 공(功)을 기리는 것만큼이나 과(過)를 냉정하게 묻고 따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목포의 부좃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지언정, 민주주의의 전진을 조롱했던 시인을 향한 무비판적인 찬가가 그곳에서 울려 퍼져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념이 아니라 잘못된 일을 한 사람의 악행과 죄상을 기록해 후세에 알리고 기억하기 위해 단죄비(斷罪碑)를 세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