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부산은 ‘비즈니스’, 남해는 ‘가족’…워케이션 경쟁력은 차별화에 있었다
부산역 5분 거리 거점센터서 일하고 해운대 밤바다로 퇴근 스타트업·투자 연계해 11개 기업 이전…관광 넘어 산업정책 확장 남해, 아이 돌봄·요트·숲 체험 결합…가족형 체류시장 개척
[목포시민신문] 일하는 장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업무와 휴식을 결합한 ‘워케이션’이 체류형 관광과 지역소멸 대응의 새로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풍부한 섬·바다·근대문화유산을 보유한 목포는 여전히 잠시 들렀다 떠나는 관광도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목포시민신문은 창간 기획특집 ‘슬로시티 목포, 일과 쉼 잇는 워케이션 도시로’를 6회에 걸쳐 연재한다. 1회에서는 워케이션이 주목받는 배경과 가능성을 짚고, 2회에서는 업무공간과 숙박, 교통, 야간 콘텐츠, 섬 접근성 등 목포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이어 부산시와 경남 남해군, 제주도와 강원 속초·양양의 운영 사례를 통해 성과와 한계를 살펴본다. 5회에서는 태국 치앙마이의 코워킹 공간 ‘펀 스페이스’를 찾아 디지털 노마드가 머무는 도시의 조건을 확인한다. 마지막 회에서는 근대건축물을 활용한 코워킹 허브와 섬 연계 리트릿, 숙박·교통 통합상품 등 목포만의 실행 전략을 제안한다.
이번 기획은 단순한 사례 소개를 넘어 항구도시 목포의 정체성을 재해석하고, 슬로시티의 여유와 일상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체류도시의 미래를 모색한다.<편집자 주>
<글 게지 순서>
① 왜 지금 목포관광 웨케이션가
② 목포형 웨케이션 인프라 점검
③ 제주도‧속초시 워케이션
❹ 부산‧남해군 워케이션
⑤ 태국 치앙마이 펀 스페이스
⑥ 목포형 웨케이션 가능한가
오전 9시, 부산역에 내린 직장인과 창업자들이 여행용 가방을 끌고 인근 고층 건물로 향한다. 걸어서 5분 남짓. 건물 꼭대기 층에 마련된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에 들어서면 통유리창 너머로 부산항과 도심이 한눈에 펼쳐진다. 항구를 오가는 선박과 부산역을 드나드는 열차가 한 화면에 겹친다. 사무실에 출근했지만 여행지에 도착한 듯한 풍경이다.
오후 5시 노트북을 닫으면 부산에서의 두 번째 시간이 시작된다. 부산역 주변에서 돼지국밥을 먹거나 영도와 북항을 걷고, 전철을 타고 해운대 밤바다로 향한다. ‘사무실로 출근해 바다로 퇴근하는 하루’다. 부산이 워케이션 참가자에게 파는 것은 책상 한 자리만이 아니다. 업무와 산업, 관광, 도시생활이 연결된 부산에서의 하루다.
반면 남해군 서상 워케이션센터의 아침 풍경은 부산과 사뭇 다르다. 어린아이가 센터 안을 뛰어다니고 아버지와 매니저가 함께 아이를 돌본다. 한쪽에서는 어머니가 노트북 화면에 집중한다. 숲과 바다로 나간 아이들이 체험활동을 하는 동안 부모는 업무를 이어간다. 일하는 사람들만 모인 공유사무실이라기보다 가족의 생활과 업무가 한 공간에 들어온 모습이다.
부산이 도시의 산업과 네트워크를 앞세웠다면 남해는 부모가 일하는 동안 자녀도 행복해야 한다는 문제에 답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워케이션 시장에 뛰어든 상황에서 두 지역은 유명 관광지를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가 왜 이곳에서 일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설정했다.
△부산 워케이션의 출발점은 ‘워크’
부산형 워케이션의 핵심은 ‘비즈니스 인 부산(Business in Busan)’이라는 구호에 담겨 있다. 다른 지역이 휴양과 관광에 무게를 둘 때 부산은 처음부터 ‘워크’, 즉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사업 기회를 전면에 내세웠다.
거점센터를 부산역 가까이에 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에서 KTX로 약 2시간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역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장기간 휴가를 내기 어려운 직장인도 출장 전후 하루나 이틀을 더 머물 수 있고, 수도권 기업 관계자는 오전에 부산으로 내려와 바로 회의와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센터에는 고속 인터넷과 화상회의 시설, 독립 업무석과 회의실, 탕비실과 사물함 등이 갖춰져 있다. 이용료는 무료다. 취재 당시 이른 시간부터 20여 명이 업무에 몰두했고 외국인 이용객도 눈에 띄었다. 서울의 한 정보기술 기업에 근무하는 이용자는 “출장을 왔다가 하루 더 머물며 센터를 이용하고 있다”며 “오후 5시까지 일한 뒤 바로 옆 부산역에서 열차를 탈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하나의 거점센터에 그치지 않고 지역 곳곳에 위성센터를 배치했다. 영도와 중구에 이어 라발스호텔 라운지와 송도의 숙박시설 등으로 업무 거점을 넓혀 모두 6곳을 운영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용자는 부산역권에서 일한 뒤 북항과 원도심을 경험하거나 영도·송도에서 바다와 가까운 일상을 선택할 수 있다.
부산 밖 기업의 재직자와 대표자에게는 숙박비 지원도 제공한다. 자료 기준 1박당 최대 5만원, 최소 3박에서 최대 10박까지 지원해 최대 50만원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업무공간과 숙박, 관광·환영 꾸러미,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함께 묶어 체류 부담을 낮춘 구조다.
△워케이션에서 기업 이전까지
부산형 모델의 차별성은 참가자를 관광객으로만 보지 않는 데 있다. 거점센터에서는 스타트업 간담회와 창업 강연, 지역기업 협업, 투자자 교류 프로그램이 열린다. 정보기술과 금융, 영상콘텐츠, 해양산업 등 부산의 특화산업을 워케이션 참가자와 연결한다.
부산워케이션센터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부산 워케이션 누적 참가자는 1만194명이다. 2024년 한 해 이용자는 약 6천900명으로 전년의 3천300여 명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참여기업은 1천100여 곳이며, 이 가운데 746개사는 숙박 연계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더 눈에 띄는 성과는 기업 이전이다. 부산 워케이션을 경험한 타 지역 스타트업 가운데 2023년 이후 11개사가 부산에 본사나 지사를 옮겼다. 며칠 머물다 떠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부산의 창업기관과 기업, 투자지원 제도를 접한 참가자가 실제 사업거점을 만든 것이다.
장영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워케이션 TFT 팀장은 부산의 경쟁력으로 접근성과 업무환경, 비즈니스 연계를 꼽았다. 그는 “관광 중심 워케이션과 달리 부산은 처음부터 워크에 초점을 맞췄다”며 “참가자를 스타트업 지원사업과 창업·투자기관에 연결하는 마중물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즐거워야 부모도 일할 수 있다
남해군은 부산과 다른 길을 택했다. 도시형 업무 인프라나 기업 네트워크로 부산과 경쟁하기보다 ‘가족형 워케이션’이라는 빈틈을 찾았다. 자녀가 있는 직장인은 근무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도 돌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워케이션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다.
서상 워케이션센터에서는 요트와 쿠킹클래스, 숲 체험, 아이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부모가 업무공간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지역 자연과 바다를 경험한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한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는 방식이다.
서울에서 네 살 자녀와 함께 남해를 찾은 이형주(38)·김서현(39)씨 부부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며 유연근무를 활용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워케이션을 경험한 이씨는 “아이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배를 타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며 “워케이션에서 가장 걱정되는 아이 문제가 해결되니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가족형 워케이션은 지역 소비 규모에서도 차이를 만든다. 운영 참여업체인 ㈜다리메이커에 따르면 4인 가족이 남해에서 2박3일 머물며 숙박·식사·체험에 지출하는 비용은 평균 150만원을 넘는다. 혼자 온 참가자가 업무공간과 숙소를 이용하는 것보다 지역 곳곳으로 소비가 넓어진다.
아이 돌봄을 지역 일자리로 연결한 점도 눈에 띈다. 지역 주민을 보육 인력으로 양성하고, 주민이 잘 아는 숲과 마을·바다 자원을 프로그램에 활용한다. 외부 업체가 만든 획일적인 체험상품이 아니라 지역민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구조다.
강호산 다리메이커 대표는 “부산이 비즈니스, 제주가 웰니스를 대표한다면 남해는 가족 친화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지역민과 함께 돌봄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남해군은 2026년에도 서상 워케이션센터 운영 인력을 채용하며 가족형 거점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서상에서 앵강으로, 개인·가족형과 기업형 이원화
남해의 워케이션은 서상센터에 이어 이동면의 ‘앵강 워케이션센터’로 확장되고 있다. 앵강센터는 산과 나무에 둘러싸인 회색빛 2층 건물이다. 번화한 상권 한복판의 공유오피스와 달리 주변의 고요한 자연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상에서 떨어져 팀 단위로 집중하고 교류하는 기업형 거점의 성격을 보여준다.
앵강센터에는 지방소멸대응기금 등을 포함해 총 35억원이 투입됐다. 지상 2층, 연면적 833㎡ 규모로 조성됐으며 대기업과 공공기관, 스타트업의 워크숍과 장기 체류를 수용하는 기업형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2020년 시작한 청년 촌라이프 실험과 정보기술 코워킹 플랫폼 사업을 이어받았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남해 워케이션 ‘해랑’ 건물은 바다 가까이에 자리 잡은 목조 외관의 독립적인 체류시설이다. 도시의 세련된 업무 라운지와는 다른 농어촌 휴양지의 분위기를 지닌다. 서상과 해랑, 앵강 등 거점별 역할을 나누고 민간 숙소와 농어촌 체험마을을 연결하면 남해군 전체가 하나의 워케이션 권역이 될 수 있다.
남해군은 서상센터를 중심으로 개인·가족 참가자를 확보하고, 앵강센터에서는 기업과 공공기관을 유치하는 이원화 전략을 추진한다. 가족형 프로그램으로 남해를 처음 방문하게 하고, 기업형 프로그램과 장기 체류상품으로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박종건 남해군 전략사업단장은 워케이션을 인구소멸 대응을 위한 관계인구 정책으로 설명했다. 당장 주소를 옮기는 정주인구만 바라보기보다 외지인이 남해에 반복적으로 머물고 소비하며 지역과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워케이션 참가자는 관광 비수기와 평일에도 숙박시설과 식당을 이용한다. 농어촌 민박과 민간 숙소, 음식점이 할인과 체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행정이 운영하는 센터 밖으로 경제효과가 퍼질 수 있다. 가족 방문은 재방문과 장기 체류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교통과 장기 수요는 남해의 숙제
남해형 모델에도 과제는 있다.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축소하고 사무실 출근을 확대하면서 기업형 워케이션 시장이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않을 수 있다. 수도권에서 남해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길고 지역 안의 대중교통이 부족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남해군은 기업 임직원뿐 아니라 디지털 노마드와 개인·가족 고객을 확대하고, 체류기간을 최소 일주일 이상으로 늘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스포츠 전지훈련과 농어촌 체험, 지역축제도 워케이션과 연계할 계획이다. 그러나 체류가 길어질수록 세탁과 취사, 의료, 장보기, 아이 교육 등 관광상품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생활서비스가 중요해진다.
새 건물을 조성했다고 수요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기업을 찾아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비수기에도 공간을 채우며, 돌봄 인력과 지역 체험업체의 품질을 관리할 전문 운영조직이 필요하다. 부산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비즈니스 수요를 꾸준히 연결한 것처럼 남해도 가족형·기업형 시장을 전담할 운영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목포, 부산과 남해 사이에서 답을 찾아야
부산과 남해의 현장은 목포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목포는 부산처럼 KTX역과 항구가 가까운 도시형 접근성을 갖췄고, 남해처럼 바다와 섬을 활용한 휴양·가족 체험도 가능하다. 근대역사문화공간과 원도심, 해양산업과 수산업, 미식과 예술까지 두 모델을 연결할 자원도 있다.
목포형 워케이션은 목포역 인근과 원도심에는 기업인·창작자·디지털 노마드가 일할 수 있는 코워킹 허브를 두고, 지역의 수산·조선·해상풍력·문화예술 기관과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외달도와 달리도, 고하도 등은 가족형 섬 체험과 회복 프로그램으로 연결할 수 있다.
아이 돌봄과 반려동물 동반, 섬 이동, 야간관광까지 해결한다면 체류 대상도 넓어진다. 참가자가 낮에는 원도심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항구 야경과 미식을 즐기며, 주말에는 가족과 섬으로 들어가는 일주일 상품을 설계할 수 있다.
국도1호선 포럼에서 목포 웨케이션 사례를 발표한 박정문씨는 “도시의 관광정책은 규모가 아니라 선택이며 부산은 ‘비즈니스’, 남해는 ‘가족’이라는 분명한 고객을 정했고, 그들이 머물기 어려운 이유를 정책으로 해결하고 있다”며 “목포 역시 풍경이 좋다는 홍보를 넘어 누구를 불러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지 답해야 하며 워케이션의 경쟁력은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하루와 지역의 미래를 얼마나 촘촘히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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