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 전남에서는 아프지 마오, 이 슬픈 말은 언제 끝날 것인가?
정은채 시민정책·행동 공동대표/ 남도책방&돌담갤러리 대표 · 전) 교수
[목포시민신문] 책방 한구석에서 책 한 권을 펼쳤다. “전남에서는 아프지 마오” 제목부터 가슴이 먹먹하다. 전남에서는 아프지 말라니.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 말이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린 지역이 우리가 살아가는 전남이고, 목포이며, 서남권이다. 책장을 넘기며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36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려왔는가. 1990년 10월 25일, 목포상공회의소가 국립목포대학교 의과대학 신설을 정부에 촉구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지역 의료 불평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인가. 사람의 생명에도 지역의 차별이 있어야 하는가? 서울에서는 당연하게 누리는 의료서비스가 전남의 섬과 농어촌에서는 간절한 소망이 되기도 한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병원까지 이동하는 시간부터 걱정해야 한다. 중증환자는 지역을 떠나 대도시 병원으로 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은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고통까지 감당한다. 의료 접근성의 차이는 단순한 생활의 불편이 아니다. 때로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민이 살아가는 지역에 따라 생명을 지킬 기회가 달라진다면, 우리는 국가의 역할을 다시 물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구가 많은 지역에 더 많은 기회를 배분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필자는 목포를 사랑한다. 그러나 목포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감싸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목포가 오랫동안 겪어온 소외와 불균형을 더 이상 숙명처럼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36년의 기다림 앞에서 정치는 무엇을 했는가?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이 목포의대 설립을 약속했다. 선거철이면 지역 발전을 이야기했고, 의료 불균형 해소를 외쳤으며, 서남권 주민의 숙원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무엇인가. 의대 설립을 둘러싼 지역 갈등은 깊어졌고, 선정 과정의 공정성을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정치권과 행정기관에 책임 있는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특정 지역의 몫을 무조건 빼앗아 오자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절차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하고, 그 과정에 의문이 있다면 자료를 공개하고 검증하자는 것이다.
공정성에 대한 질문을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지역 간 갈등을 키우거나 시민의 목소리를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다. 정치인은 시민의 분노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분노가 발생한 원인을 해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제 시민운동도 달라져야 한다. 필자는 이번 목포의대 사태를 지켜보며 시민운동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거리에서 외쳤다. 국회로 올라갔고, 청와대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공정한 절차를 요구했다. 그 모든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도 질문해야 한다.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무엇을 이해하고, 어떤 변화에 동의하며, 그 변화에 얼마나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시민운동이 정치인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민의 목소리가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시민이 주인이어야 한다. 정치는 시민의 요구에 답해야 하고, 행정은 그 요구를 정책으로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시민정책·행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변화이기도 하다. 이제는 구호를 넘어 정책을 만들고, 분노를 넘어 대안을 제시하며, 집회를 넘어 시민의 참여와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목포의대 문제를 넘어 목포의 미래를 보아야 한다. 목포의대 설립은 반드시 진지하게 추진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의대 하나가 세워진다고 모든 의료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립대학병원 설립과 전문의료인력 확보, 응급의료체계 개선, 섬과 농어촌 의료 접근성 확대, 지역 의료인력의 정착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또한 목포의 미래는 의료 문제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청년이 떠나는 도시, 일자리가 부족한 도시, 원도심이 쇠퇴하는 도시, 고령화가 깊어지는 도시의 현실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목포의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의료가 불안하면 정주 여건이 나빠지고, 정주 여건이 나빠지면 청년과 가족이 떠난다. 사람이 떠나면 지역경제는 약해지고, 다시 의료와 생활 기반이 흔들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므로 목포의대 문제는 단순한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목포와 서남권이 앞으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으로 남을 것인가를 묻는 문제”다.
목포를 사랑한다면 이제 바꾸어야 한다. 필자는 더 이상 목포의 미래를 정치인의 약속에만 맡기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정치와 행정을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민과 정치, 행정이 각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진정성 있게 협력하는 새로운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의대 설립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역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목포를 사랑하는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목포가 더 나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까지 갈라져서는 안 된다. “전남에서는 아프지 마오”라는 책을 덮으며 한 가지 소망을 품는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는 정말 그랬구나. 이제는 전남에서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데."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정치에 책임을 묻고, 행정에 실행을 요구하며, 시민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가난은 견뎌도 불공정은 견딜 수 없다는 시민들의 절규를 이제는 공정한 제도와 실질적인 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36년을 기다렸다. 이제는 기다림이 아니라 변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목포를 사랑한다는 것은 목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기 위해 오늘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다.
“전남에서는 아프지 마오.”
이 슬픈 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날을 위해, 필자는 오늘도 목포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다.